교부송달
오늘 나의 할 일에
5억원의 독촉장 반송이 떳다
IA51에서 독촉장을 재출력하여
출장을 나간다
신주소로도, 구주소로도 찾기 힘든
면목동 달동네
모스크바보다 춥다는
올 겨울 강추위에
5억원의 주인공을 찾아 헤멘다
부동산과 슈퍼주인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골목 끝 2층 다세대주택
이윽고 독촉장의 주인장을 만난다
황당해하는 그에게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고
재빨리 수령증에 사인을 받는다
나는 개선장군인양
택시를 잡아 탔지만
백미러로 보이는
그는 패잔병처럼
고개를 떨군다
아빠는 오늘도 무용담을 펼친다
무용담 속의 아빠는
상사보다, 부하보다, 고객보다 세다.
엄마와 나는 오늘도
아빠의 무용담을 들으며 저녁을 먹어야 한다
아빠의 핸드폰이 울리고
사장님의 전화가 오면
아빠는 일어나서 90도로
예예하며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끊고 아빠는 우리를 보고
“우리 회사는 나 없으면 안돼”하며
무용담을 계속한다
나는 저녁을 먹으며 생각한다
아빠의 무용담 속 진실은 과연 몇%일까?
문자보내고
전화하고
전화받고
상담하다
하루가 후다닥
보고하고
보고받고
보고서 쓰고
보고서 받다
한달이 후다닥
일하고
교육받고
시 쓰고
사진 찍다
일년이 후다닥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아프다
인생이 후다닥
귀가 아파
이비인후과에 갔다
안경테 때문에
귓불에 염증이 생겼단다
귀에게 미안했다
40년간 무거운 안경테를 들게 해서
돌아오는 길 안경점에 들러
가벼운 안경테로 바꾸어 주며
고마운 귀에게 부탁했다
조금 더 버티어 주렴
네가 들어주는 그 안경 속 눈으로
아직 보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
나는야 잔반처리반
“배부르면 안먹어도 돼요” 아내는 말하지만
그릇이 깨끗이 비워지면 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나는야 잔무처리반
“건강챙기며 적당히 해” 전무님은 말하지만
조직성과실적이 올라가면 나를 보며 엄지척하고 유유히 퇴근한다
나는야 잡일처리반
“집안 잡일은 막내인 니가 다 하는구나” 큰엄마는 말하지만
소파에서 쉬고 있는 장손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웃는다
오늘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메이는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잔반, 잔무, 잡일을 찾아 헤메이는
나는야 XX처리반
그분이 오신다
우리들의 VIP
그분은 때때로 가상계좌로 오신다
법원에 배당받으러 갔다가
무배당으로 빈손 복귀한 오후
GC01화면에 나도 모르게
그분이 다녀가셨다
그분이 오신다
우리들의 구세주
그분은 때때로 신용카드로 오신다
무거운 현금들고 오시기 힘들어
가벼운 카드 한 장 들고
그분이 방문하셨다
그분이 오신다
우리들의 희망
그분은 때때로 수표들고 오신다
현장기동반 출동했다가
폐문부재로 허탈하게 돌아온 날
빳빳한 수표들고
그분이 나타나셨다
그분이 오신다
우리들의 신
그분은 때때로 공매대금으로 오신다
전임자가 공매의뢰하고
인수인계도 안해주고 떠난
정리보류 체납이 3년만에
캠코를 통해 살아나
그분이 돌아오셨다
그분이 오신다
우리들의 VIP, 구세주, 희망이시며 신이신
그분은 봄처럼 오신다
우리는 그분을 꽃사지와 미소로 영접해야한다
오늘도 우리 모두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그분의 이름은 고액분납자
오늘은 2년만의 정기건강검진일
안과, 신장내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치과를 돌며
검진을 받는다
의사는 차트를 들고 검사결과에 따른
진단과 처방을 설명한다
안과 좌측눈 안압이상 및 안구 건조 전조등 교환필요
신장내과 사구체 이상 배기가스배출과다 촉매장치 수리필요
흉부외과 심장정맥 혈관막힘 혈전용해제 투입 엔진오일 교환필요
정형외과 관절검사 인공관절 등속조인트 수리필요
치과 치아우식 윗니 임플란트 앞바퀴 타이어 교환필요
휴!
기십만원을 들여 시한부인생을 2년간 더 연장한 나는
치료를 받아 말끔해진 모습으로 비상등을 깜빡이며
나를 보고 웃고 있는 2004년식 베르나를 몰고
자동차검사소를 빠져 나온다
대한민국을 고발합니다
중앙지검 입구에서 손글씨팻말을 목에 걸고
백발의 노파는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녀가 애타게 찾던
대통령,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이
들을 리는 없겠지만
고발장은 메아리가 되어
서초동에 울리고 있었다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하여 들어간 민원실
여직원은 접수를 위하여 연신 복사기를 돌리고
고발인들은 박스에 담긴 서류들을
끝없이 게워내고 있었다
내 순서가 되자 접수직원은
익숙하게 모니터에 입력을 하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접수증을 출력하여 나에게 주었다
당신은 정녕 우리를 고발할 수 밖에 없나요
당신은 고발인이 되고
우리는 피고발인이 되어야만 하는 현실
내일이 되면 당신이 피고발인이 되고
우리는 고발인이 되겠지
참고인이 피의자가 되고 피의자가 피고인이 되듯이
피고발인이 되어 6시간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날
서초동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네
고발의 시대에 피고발인의 죄를 씻어내듯이
밤새도록 내렸지
비가 그치면 우리들은
또 다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하여
서초동 중앙지검 민원실에 가야한다
성신여대입구역에 내려
돈암동을 지나
아리랑 고개로 접어들면
그녀의 집이 있다
처녀보살, 그녀의 집에 들어가면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무당을 처음 시작할 때는 처녀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랑 싸우고 나면
그녀에게 부부운을 물어보았다
보살은 아버지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평생 집 밖으로 떠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시골에 정착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아내와 결혼을 하자
자식운을 물어보셨다
어머니의 성화에 우리는 칠월칠석날
처녀보살을 만나야 했다
둘이서 같이 지니고 다니면
견우와 직녀처럼 찰떡궁합이 된다는
부적을 사서 온 다음달
아이가 생겨 딸아이를 얻었다
보살은 나에게 아내운과 말년운이 좋다고 했다
건강 조심하라고 했다
오늘 성북경찰서에 체납처분면탈범고발장을 접수하고
돈암동 아리랑 고개에 간다
그곳은 재개발이 되어 처녀보살은 떠나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 있었다
돈암동 태극당 빵집에서
단팥빵과 카페라테를 먹으며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운은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까?
돈암동 아리랑고개에는
처녀보살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