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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May 17. 2024

그래서, 나는 안도한다.

제3장. 삶.


회색빛 빌딩 끼인 섬광들은 울부짖고

 분을 앞서려는 차량은 비명을 지른다

거친 스팔트 위로 창백한 손은 떨어지고

어제도 내어 쉰 숨은 오늘도 닮았다.


추적하는 시계와 쫓기는 시간 속에

복사기의 건조한 파열음과

전화벨아우성만은 끝 간 데가 없으나

일상에서 사람의 냄새는 사라진다.


숨가쁜 층계를 따라 허공을 향해 오르고

누군가말들만 차가운 혀에서 우물거린다

흐릿해지는 의식을 타인의 목소리로 채울 때

유년의 방안에서 나를 위한 종소리가 린다.


새하얗게 눈 내린 머리카락을 훈장삼아

기울어진 술잔 퇴근길을 의탁한다

검은 고양이 한마리 만이 어슬렁거리고

고장난 가로등 만이 축하인사를 전한다.


휴대폰 속의 고립된 세상이 귓속을 메우고

어스름을 따라 길어지는 건물들 사이로

노쇠한 얼굴의 그림자들은 사라진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를 치밀하게 추격한다.


서로의 안부를 묻던 별빛이 내려앉은 밤

반딧불이를 따라 흐르는 고요의 밤

푸르스름한 손톱달 아래 떠다니는

어제와 다른 가난한 나의 문장들.


비록 내일도 오늘의 거울을 닦겠으나

어릴적 종소리를 다시 찾아 헤매는 밤

문장 속에 숨겨둔 달빛 한줌

나는 끝내 달콤한 꿈을 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도한다.


덧. 복숭아와 매실이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편소설의 마지막 퇴고작업을 하고 기도하듯 우편으로 부치면서, 매일이 닮은 듯한 저의 삶에 자연과 글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지루하리만큼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도 사랑하는 것들의 성장하는 모습이 발끝 아래로 전해주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같은 듯 하지만 어제와 다를 작가님과 독자님들의 잔잔한 일상을 응원합니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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