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대학에 들어가면 하고 싶었던 것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후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배우고 싶었던 게 많았다. 한 20가지 정도를 일기장에 쓰며 입시에 대한 동기부여를 했다.
대학 입학 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하고 싶었던 20개가 무엇이었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어딘가 있을 일기장을 찾으면 알 수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했던 것들은 기억한다. 어찌되었던 한달 이상 했던 것은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한문, 권투, 수영, 검도, 기타(클래식), 서예, 피아노다. 이 11개를 2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해 봤다. 영어 회화 3개월, 일어 6개월, 중국어 3개월, 독일어 1개월, 한문 1년 이상, 권투 3개월, 수영 6개월, 검도 몇 년, 기타 1개월, 서예 1개월, 피아노 11개월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역을 나누면, 운동 분야는 권투하고 수영 배우고, 그 다음 검도했다. 외국어 분야도 2개 이상을 동시에 하지는 않았다. 일어 배우고, 중국어 배우고 영어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악기도 비슷한 패턴으로 했다. 매주 운동 하나, 외국어 하나, 악기 하나를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배우고 싶었던 것 절반은 1년 6개월 안에 해 볼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는 지지리도 공부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입학 오리엔테이션 때, 대학요강을 신입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자였는데, 정독했다.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배우고 싶은 커리큘럼-수강과목 리스트를 뽑았다. 배우고 싶었던 학문, 학과, 전공은 철학, 역사, 한문학, 국문학, 언어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법학, 이과 계열의 수학과 천문학 계열의 과목들이었다. 처음에 한 390학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 요건이 140학점 정도였는데, 이 정도면 복수 전공을 넘어 학사 학위 4개 정도는 따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수강신청 할 수 있는 최대학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걸 다 듣는 건 불가능했다. 다시 추려 봤는데, 230학점이 나왔다. 이것도 불가능했다. 또 추려서 150학점 정도로 일단 계획을 짜는게 가능했다. 4년 동안 듣고 싶은 과목 리스트를 만들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나중에 내 선택을 가만히 회고했다. 운동과 악기를 보니, ‘나는 팀운동을 안 좋아 하는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축구, 배구, 농구, 야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공을 직접 손과 발로 다루는 데 미숙한 것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맞추는데, 기질적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악기도 혼자 악보 보고 쳐도, 멜로디를 충분히 뽑을 수 있는 피아노다. 런닝은 그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뛰는 것 자체가 혼자 하는 일이다. 권투와 검도 했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동작이 거울 보면서 자세 교정하는 거였다.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서 완벽한 동작을 체득하는 행위가 편했다. 나와의 싸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배우고 싶었던 전공을 보니, 참 돈이 안 되는 것만 좋아했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유일하게 법학만이 실용 학문인데, 법전 읽는 게 재미 있을 것 같아서 배워보고 싶었다. 수학은 수학문제 보고 씨름하는 게 괜찮아 보여서, 천문학은 하늘 쳐다 보며 사는 거도 즐거울 것 같아서 해 보고 싶었다. 사람과 만나는 것보다는 주로 텍스트 보는 게 행복한 사람이었다.
최근 2년동안, 한달 이상 배운 것은 드럼, 테니스, 필라테스, 코딩, 발음발성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혼자서 표로 정리해 보았다. 리스트만 나열하면 재미 없으니까, 속성 분해를 시도해 보았다.
가로에는 내가 배우고 싶어서 배웠던 것들을 옆으로 나열했다. 세로에는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는 지 나름대로 생각해 넣어 보았다.
표) 배웠던 것들과 요소
배웠던 것들은 변치 않는 팩트다. 미래에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이미 직접 해본 과거의 사실이다. 혹은 현재 진행형이다. 왼쪽에 들어간 것은, 남이 집어 넣어 준게 아니라, 아주 주관적으로 내가 집어넣은 거다. 그리고 O,△,X도 내가 자의로 판단해서 기입한 거다.
이걸 정리해 보면, 나라는 사람은,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고, 야외에서 햇빛 받으며 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막대로 뭔가 때리는 것에 익숙하며, 남들과 경쟁해서 승리하는 것보다 어떤 동작을 반복하며 완벽한 자세 혹은 완벽한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면, 다음 배우고 싶은 것을 찾는 데도 도움이 아주 많이 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야 한다면, 이 속성들을 충족시키는 것을 찾으면 된다.
혼자, 야외, 막대, 반복 키워드와 겹치는 종목을 찾으면 된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나는 내가 “골프”를 아주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일단 야외 스포츠에다가 막대기로 뭔가를 때린다. 골프 룰은 잘 모르는데, 팀플레이가 아니라, 개인 플레이로 알고 있다. 남이 어떻든 자기 스코어 관리하는 게 핵심인 스포츠다. 그리고 좋은 스윙 자세를 가지기 위해 같은 자세를 계속 반복하며 연습해야 한다. 반복 연습이 즐겁다. 그게 편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골프를 배워 보겠다. 지금은 테니스도 충분히 재미 있다.
이렇게 요소를 확인하고 그 다음을 선택하면, 자기만족, 행복감이 충만하게 넘친다. 자신이 기뻐하는 요소들이 가장 많이 들어간 종목을 선택하니 당연한 결과다.
왼쪽에 구성 요소들은 주관적으로 집어 넣는 게 중요하다. 같은 운동 종목에도 어떤 사람은 햇빛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땀 흘리는 느낌이 좋아서 수영을 별로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생각나는 것들을 집어 넣는다. 그리고 집어 넣은 요소가 그 사람을 정의한다. 구성 요소들이 그 사람을 설명한다.
단, 목적과 요소를 구별할 필요는 있다. 구성 요소로 “체력증진”이나 “다이어트”를 집어 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본인의 주된 관심사임은 틀림 없다. 그런데 모든 운동은 체력 증진과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운동을 하면 할 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이 늘어나는 종목도 있나? 체력증진과 다이어트는 운동의 목적이다. 런닝과 롤러스케이트는 길에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바퀴달린 신발을 이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차이가 있다. 물에서 하는 수영과 요트도 맨몸으로 하느냐 이동수단을 조작하느냐는 차이가 있다. 운동 종목의 구성 요소는 그 운동이 다른 운동과 구별되는 어떤 차이점이다. 그러니 모든 운동이 가지는 공통점과 효과는 구성 요소가 될 수 없다.
여담인데, 내가 해 본 것 중에 다이어트 효과가 제일 좋은 건, 권투와 검도다. 움직이지 않으면 두들겨 맞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런닝이나 수영은 하다가 지치면 자연히 속도가 떨어져 느려진다. 그런데 격투 종목에서, 내가 지치면 상대방이 나를 때려 눕힐 찬스라 여기고 달겨 든다. 주먹으로 맞으면 별 보이고, 대나무 죽도로 맞아도 멍든다. 맞지 않으려면 같이 받아치거나, 도망 다녀야 되는데, 그것도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손발 떨리며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움직이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땀을 아주 쏙 뺄 수 있다.
여하튼 위의 표에서 왼쪽이 중요하다. 왼쪽에 있는 단어들이 자기 자신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