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누드전@소마
근대에 들어 누드화가 그 자체로서 한 장르로 확립됨에 따라 작가들은 인간 신체에 대한 관찰과 묘사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제3전시실엔 '모더니즘 누드'의 조각품들이 놓여있다.
앙리 고디에-브르제스카는 영국에서 '직접조각'을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직접조각은 정교하게 제작된 사전 모델을 기초로 작가가 고용한 장인들이 제작하는 과거의 조각 방식이 아닌, 작가가 직접 여러 단계의 조각 과정을 거쳐 형태를 완성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이것은 작가가 재료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레드스톤이라는 재료에 추상 양식까지 곁들인 댄서의 모습이 에로틱하게 느껴진다는데, 과연...?? 내겐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티스가 여성 누드에서 추상적인 면을 더 강조하던 시기에 만든 거라 한다. 이 조각상 또한 오달리스크의 나른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균형을 지탱하는 왼팔의 힘이 느껴져 온다. 정말 유혹적이고 에로틱하다...
조각가로 명성이 높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이 작품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조각을 닮았다. 석고로 만든 원작엔 쭉 뻗은 두 팔과 머리를 나중에 첨가했으나,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단순화해 고쳐 만들었다고 한다. 늘씬한 모델이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기존의 전사 조각은 용맹과 남성다움이 물씬 뿜어져 나왔었다. 그러나 무어의 이 조각상은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전사가 힘없이 쓰러지며 숨지기 직전의 극적인 순간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두 개의 엉덩이가 조합된 형태로 만들어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도록 한 작품이다. 관절 같기도 한 두 개의 둥근 모양은 가슴 같아 보인다.
손으로 쓰다듬고 싶은 재질인데, 코스힐이라는 붉은색 사암이라 한다. 성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그런지, 맞잡은 두 손과 몸을 비틀려 살짝 들린 어깨에서 힘의 과시가 느껴진다.
모더니즘 누드의 회화가 전시되어 있는 제5전시실로 건너갔다.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과 유화의 발명은 현실을 화폭에 실감 나게 담을 수 있게 했다. 19세기는 대상을 완벽하고 이상적으로 담느냐(신고전주의), 자연 그대로 담느냐(자연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혹은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대로 그리느냐(낭만주의)의 삼파전이었다. 그러나 카메라의 등장으로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에 대해 화가들은 좌절과 회의감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그림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시도한 화가들은 모네와 고흐, 세잔을 시발점으로 한 표현주의를 넘어 그림의 대상을 아예 없애는 추상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그 중간에 위대한 화가 피카소가 있다. 대상의 형태를 해체해 다시 그림으로써 그림의 본질인 평면으로 되돌린 거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한 입체주의를 완성한 피카소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화법이 남아 있다.
그림 속 여인의 얼굴은 무표정하고 차분하지만 관객을 바라보는 눈은 매우 도전적이다. 모델은 피카소의 두 번째 아내인 자클린느 로크로라 한다.
언뜻 보면 무슨 그림인가 싶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니 욕탕에 사람들이 뛰어들고 나오는 모습으로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자연주의와 전통을 완전 폐기하고 형태의 의미를 추구한 봄버그는 현대 도시의 삶을 기하학적인 순수 형태로 재현하려 했다.
1920~40년대는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누드를 묘사하는 두 가지 지배적인 양식이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비합리적인 것, 의식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예술 혁신운동이다.
'스킬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인데, 상체는 처녀지만 하체는 긴 목과 빽빽하게 난 3중의 사나운 이빨을 가진 여섯 개의 개 머리와 열두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흉측한 모습이다. 원래는 여신의 아름다운 딸이었으나 해신 글라우코스를 사이에 두고 마녀 키르케의 미움을 사 그녀의 마법으로 끔찍한 바다 괴물이 되었다고 한다. 그림 가운데로 살짝 보이는 뱃머리를 보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말하는, 한 가지 위험을 피하려다 다른 위험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하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로 지나기'를 생각나게 한다. 카리브디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이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메시나 해협에 실제로 '스킬라 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 그림이 누드와 관련 있다는데, 아마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로 그것일까...??
벨기에 화가 폴 델보는 누드와 고전주의 건축물을 결합해 에로틱하고 꿈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좋아했다. <잠자는 비너스>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맞선 벨기에의 음울한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키리코는 이 작품에 대해 "현재의 삶과 고대의 비전을 나타내는 장면들을 한 그림 속에 결합해 불안으로 가득 찬, 꿈같은 현실을 만들어냈다"라고 설명했다. 그림에서 '고대'는 고전주의 석고상과 아케이드이고, '현재'는 바나나와 멀리 보이는 기차다. 인간의 덧없는 삶을 나타내는 과일과 예술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석고상을 대비시켰으나 여성의 석고상과 바나나의 결합엔 쾌락적인 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주의 화가인 그뤼베는 성경에 나오는 욥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희망을 잃지 말자는 비유로 사용했다. 그림 속 인물이 바라보고 있는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또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하지만, 손으로 간신히 진정시키네."
- 구약성서 욥기 23장 2절 -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의 이 그림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작품에서 대상을 결코 이상화하는 법 없이 육체 자체를 통해 일상적 현실을 드러내려 했다.
부드럽고 대리석처럼 매끄럽고 흰 피부로 나타낸 고전적인 누드화와는 달리, 이 그림 속 모델의 살은 축 처지고 얼룩덜룩하고 붉게 상기까지 돼 있다. 거친 붓 터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누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감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 순간 음란해진다.
카미유 레모니에(시인/저널리스트, 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