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누드전@소마
<테이트 명작선 : NUDE>는 영국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인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 중 18세기 후반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몸(누드)'를 주제로 한 거장들의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등 총 12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이는 전시다.
제1전시실에 들어서면 눈에 익은 아름다운 여인이 관객을 맞이한다. 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신 에로스의 부인인 '프시케'를 모델로 한 전형적인 고전 누드화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 전반까지 미술계를 지배했던 '고전주의'에서의 누드화는, 18~19세기 아카데미 미술교육에서 고대 신화나 성경 및 문학 등을 주제로 하는 역사화를 그리기 위한 필수 소재였다. 고전주의는 정확한 구도와 표현으로 대상을 이상화시킨다.
'테우게르'는 그리스 최고의 궁사로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에 나오는 영웅 중 하나다.
이 동상이 로열 아카데미에 전시됐을 때 고전주의와 '자연주의'의 절묘한 결합이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주의는 자연미를 존중하고 탐구하는 마음으로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예술 제작 태도를 일컫는다.
허버트 드레이퍼는 고전주의와 '상징주의' 스타일을 결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비가시적인 인간 내면의 세계, 상상력과 감각의 세계를 탐구한 상징주의는, 신화와 전설 ・ 불안과 공포 ・ 꿈과 무의식과 같은 주제를 주관적이고도 직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카루스'의 추락하는 날개는 워낙 유명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다. 드레이퍼의 그림 속 죽은 이카루스와 물의 요정들은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이 그림은 아담과 이브의 성경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은 동판화가 윌리엄 스트랭은 유화 물감으로 프레스코 효과를 내기 위해 연한 분필 같은 색채와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했다. '프레스코'는 회반죽을 칠한 벽에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 로마 전통 벽화 기법이다.
폼페이 욕장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묘사한 그림으로, 이 작품은 당시 엄청난 호평을 받아 곧바로 매입되었다. 모델들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지만 옷차림은 로마인들이 즐겨 입던 토가여서 '토가 입은 빅토리아인들'이라고 어떤 비평가가 표현했다고 한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와 부모가 없는 고아들을 보호하고 어려움에 빠진 젊은 처녀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의협 기사단'의 활약을 묘사한 그림이다.
한때 로제티, 헌트 등과 함께 '라파엘 전파' 운동을 일으켰다가 이탈해 온 밀레이의 이 작품이 전시됐을 때 나체의 여인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로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자연주의와 티치아노의 풍부한 색채에 영감을 받은 '영국적 누드'의 전통을 밀레이가 되살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과연 거장 티치아노와 견줄 만하다는 칭찬을 받았으나 너무 실물과 닮았다는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여인의 얼굴과 몸을 기사를 향해 그렸다가 지금의 모습으로 고쳐 그린 건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해서라는데, 얼마나 아카데미 평단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려야 했을지가 짐작이 간다.
원래 영국식 누드를 처음 시도하여 밀레이에게도 영향을 준 윌리엄 에티의 이 그림이 전시됐을 땐 '관능성의 가치를 떨어뜨렸다'라고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칸다울레스>는 관음에 관한 역사적 사건을 묘사한 그림인데, 리디아 왕 칸다울레스가 장군 기게스에게 자신의 아내가 옷 벗는 장면을 훔쳐보도록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누드를 뒤에서 묘사함으로써 관람객을 관음적 시선의 공모자로 참여하게 만들고 육체의 아름다움을 욕망과 기만의 대상으로 다뤘기 때문이라 한다.
고상한 척 하긴~~ 너희들이 원하는 게 사실 이거 아니었어?라는 듯하다...ㅎ
19세기 초의 여성 화가들은 누드화를 그릴 기회가 없었다. 실물을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아카데미에 입학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후반에 들어서야 입학이 가능해졌는데, 그 선구자가 애너 리 메리트였다. 그럼에도 남성의 누드화는 논란이 많아 그나마 무난한 소년을 대상으로 그렸다 한다.
메리트는 스승인 헨리 메리트와 결혼했으나 3개월 만에 사별해 그를 추억하며 그린 이 그림은, 사랑의 신 큐피드(에로스)가 잠긴 묘지의 문을 억지로 열려고 애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제 19세기 말 20세기 초 누드화는 고전과 신화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실제의 여성을 사적인 주거 공간으로 옮겨와 그려지기 시작한다.
제2전시실은 ‘사적인 누드’를 주제로 한다.
티치아노의 빛나는 살색 표현과 루벤스의 풍만한 누드를 칭송하며 누드화를 즐겨 그렸던 르누아르는 모델의 몸을 과장해서 실제보다 둥글고 풍만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의 모델은 르누아르의 아내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던 해 집안일을 도왔던 르누아르 아내의 사촌인 가브리엘 르나르인데,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했던 이상적인 여성 모델이었다고 한다...
여인의 살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파스텔화다. 드가는 모델에게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도록 주문했는데, 관람객의 존재를 의식한 모습을 묘사한 지금까지의 누드화 관례를 깬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는 열쇠 구멍으로 몰래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의도가 깔려 있다. 인물이 움직이는 순간의 동작을 포착하는 크로키의 단초라 봐도 될까?
최후의 인상주의 작가로 불리는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이 그림은 구도가 정말 파격적이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져 현대적이기까지 한다. 그림 속 여인은 보나르의 아내인 마르트이고, 왼쪽에서 화면으로 들어오는 인물은 보나르 자신으로 추정된다. 마르트는 결핵을 앓고 있어 물을 이용한 치료를 자주 해야 했다. 그래서 보나르 그림은 목욕과 관계된 아내의 그림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유명한 마티스의 이 그림의 모델은 이웃에 살던 댄서이자 피아니스트이며 화가인 앙리에트 다리카리에르라 한다. 마티스는 약 20년 동안 오달리스크라고 불리는 여성 누드를 집중적으로 그렸는데 다리카리에르도 논란 많던 이 시리즈의 주요 모델 중 한 사람이었다. 오달리스크는 그 옛날 터키 궁정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 노예 혹은 애첩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