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사가 되고 싶어.
20살이나 위인 누나와 대장장이 매형 '조'의 손에 길러진 어린 '핍'은 어느 날 부모님의 묘지를 찾아갔다가 탈옥한 죄수에게 붙들려 음식과 줄칼을 가져오라 협박당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단 약속을 지킨 핍에게 죄수는 크게 감동한다. 엄청난 부자이자 무서운 '미스 해비셤'의 집에 놀러 가는 행운을 얻은 핍은 해비셤의 양녀인 아름다운 소녀 '에스텔라'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다. 이름 모를 후원자에게서 큰 재산을 물려받게 된 핍은 신사 수업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고, 사교계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다 큰 빚을 지게 된 와중에 자신의 후원자가 '미스 해비셤'이 아닌 그 옛날의 죄수였음을 알게 돼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쫓기고 부상당하고 족쇄에 묶인 이 사람에게서 나는 오직, 내 은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 그리고 나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와 관대함의 감정을 기나긴 세월 동안 조금도 변함없이 간직해 온, 그런 사람의 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핍을 한결같이 사랑해 준 사람은 매형 '조'와 핍에게 글을 가르쳐 준 친구 '비디'였다. 그들에게서 받은 사랑이 돌고 돌아 핍은 마침내 고귀한 영혼을 가진 진짜 신사가 된다. 결국 '위대한 유산'이란 물질적인 돈이 아닌 정신적인 유산이었던 거다.
찰스 디킨스의 이 성장 소설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깊은 여운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에서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재탄생됐는데, 이번에 보려던 드라마도 2023년작으로, 영화 <덩케르크>의 주인공인 '핀 화이트 헤드'여서 무척 기대했었다. 그런데 웬걸. 소년과 죄수와의 만남이 억지스러운데다 핍이 첫눈에 반하는 도도한 '에스텔라'가 너무나 볼품없는 흑인 소녀인 거다. 아무리 그래도 시청자조차 사로잡지 못하는데 어떻게 끝까지 몰입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꾹 참고 2회를 보는데, 맙소사~ 누나가 아주 변태 성애자로 나오는 거다! 핍을 미스 해비셤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실은 조의 삼촌인데 그와 그런 행각을 벌이다니!! 너무 역겨워 그만 끄고 말았다.
한마디로 '배린 눈'을 정화시키기 위해 전부터 아름다운 영상미로 회자돼온 에단 호크와 귀네스 팰트로의 위대한 유산을 봤다.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각색해 원작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남성에게 신분 상승으로의 금 동아줄은 막대한 유산이었지만, 20세기 현대는 개인의 자질로 펼치는 성공이었으니 뉴욕의 현대미술계를 사로잡을 주인공의 예술적 재능에 초점을 맞춘 건 기발한 발상이었다. 다만, 삐쩍 마른 귀네스 팰트로의 몸매는 별로였으나 그녀를 표현한 그림들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죄수 역은 '로버트 드 니로'가 했다.
원작을 충실히 따른 영화는 없을까 찾아보다 1946년 작을 보게 되었다. 대사도 거의 다르지 않아 정말 기분 좋게 감상했다. 핍과 에스텔라가 재회해 새 출발을 하는 마지막 장면을 약간 임팩트 있게 표현했는데 그것도 괜찮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진실한 친구 '허버트' 역을 한 젊은 배우가 특히 눈에 띄었는데, 노년의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 역을 한 '알렉 기네스'였다.
'랄프 파인즈'가 죄수로, '헬레나 본햄 카터'가 미스 해비셤으로 나오는 2012년 작도 기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