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를 감명 깊게 잘 보고선 영화관을 나오며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계단이 있는 걸 모르고 헛디디다가 뚝! 소리와 함께 그만 발목을 접질려 버렸다. 그냥 삔 거겠지 했는데 발을 내디딜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의자에 앉아 남편이 급히 사온 시원한 캔맥주로 냉찜질을 했다. 광복절 휴일이라 병원이나 약국 연 곳이 없어 일단 집으로 가고만 싶었다. 어찌어찌 집으로 온 게 기적 같았다. 남편이 타박을 하면서도 소염진통제를 갖다주고 파스를 정성스레 붙여준 후 조심조심 주위를 주물러줬다. 어느새 내 발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남푠...ㅠㅠ
자고 일어나 파스를 떼어보니 전날보다 더 부어올라 있었다. 심상치 않아 보여 오전 반차를 낸 남편과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갔다. X-Ray를 찍어보니 별 이상이 안 보여 초음파를 봤더니 발등에 미세한 실금이 한 군데 갔다고 했다. 고여 있는 피를 빼고 발등에 주사를 맞고(진~짜! 아팠다 ㅠㅠ) 물리치료까지 받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반깁스를 차고 병원을 나오니 내 모습이 어이없어 남편과 한바탕 웃었다. 4주 진단을 받았는데, 일주일마다 한 번씩 내원해 진료와 물리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거란다. 정말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친 지 5일째.
양쪽 복숭아뼈 아래에 생긴 붉은 피멍자국이 점점 옅어지고 부기도 좀 빠져 있다. 퍼렇던 멍도 누런빛을 띠고 발 전체에 퍼져있다. 확실히 잘 낫고는 있지만 오래 걷거나 서 있는 건 무리다. 앉아 있어도 발이 저려와 자리에 누워 쿠션에 다리를 올려야 한다.
집안을 다닐 때도 반깁스를 찬 덕에 걷기가 수월해져 할 수 있는 집안일을 조금씩 하고 있다. 내 루틴은 잠시 멈췄지만 조급해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련다. 다만, 수업이 걱정이긴 한데 어떻게든 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별일 없는 지루한 일상의 소중함을 또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