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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같은 나날…

by 돌레인 Apr 01. 2025

어느새 벚꽃이 피는 봄이 왔다.  지난 2개월간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조금 멀게 느껴지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나 보다.  무엇보다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되어 좋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까 생각하면 우울해질까봐 그냥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기로 했다.

음력 설 당일 아침, 시어머니의 왼쪽 팔에 마비가 와 응급실로 갔다.  마침 연휴 기간이라 MRI를 찍을 수 있는 병원이 별로 없어 황망해하던 차에 ChatGPT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찾을 수 있었다.  뇌영상을 찍어보니 뇌경색이었고 바로 입원해 뇌졸중 집중치료실에서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은 덕에 어머니는 많이 좋아지셨지만 예전처럼의 일상생활은 혼자 하실 수 없어 일주일 후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었다.  의료진들과 재활치료사, 간병인 모두 친절해서 남편과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친정엄마의 치매 정도가 급격히 심해져 2시간 거리의 엄마네를 오가야 했는데, 내 오른쪽 무릎이 너무 아파 급기야 정형외과에 갔더니 물이 가득 차 있는 거다.  두 번 물을 빼고 약물 치료를 받으며 엄마를 우리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가 뇌영상을 찍어보니 고혈압으로 인한 뇌 혈관성 초기 치매가 시작되었단 진단이 내려졌다.  집에 혼자 계시다 약 드시는 시간을 헷갈려 하루에 병원 약을 4봉을 드셔서 토하는 바람에 응급실에 실려갈 뻔한 일이 일어나 아예 우리 집으로 모셔왔다.  

엄마가 하루에 드시는 약은 고혈압, 고지혈증, 알츠하이머 치매약, 뇌 영양제(2회), 위 보호제, 종합 비타민에 대마 종자유인데, 약효 충돌을 막으려 먹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  고혈압 관리를 위해 기상 후와 취침 전에 가정용 혈압기로 혈압을 재고 있다.  식단과 수면 등 생활관리에 신경을 쓰니 평소 170까지 치솟았던 엄마의 혈압이 한 달 사이 140 근처로 내려왔다.  늘 건강에 자신하며 평생 약도 잘 안 먹었다고 큰 소리를 치시더니 결국 고혈압에 치매가 와서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래도 엄마를 걱정하는 딸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이제 내 말 좀 들으시라 타이른다.

지금 엄마는 옆 동 시어머니 댁에 머무르고 계시고, 조만간 아예 옮겨올 계획이다.  몇 년 전, 시어머니가 척추 압박 골절로 집에 꼼짝 않고 계실 때 엄마가 도움을 주신 적이 있는 데다 몇 번 여행을 같이 간 적도 있어 늘그막에 서로 의지해 살아보기로 한 거다.  어머니도 한 달 후 요양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오실 거고, 장기 요양 등급을 받으면 요양보호사 도움도 받을 수 있겠지만, 한밤중이 걱정되어 엄마가 계신다면 한결 마음이 놓일 거라고 설득한 거다.    

엄마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지난주엔 둘이서 2박 3일간 여수에 다녀오기도 했다.  보청기 덕에 지난 일본 여행 때처럼 화가 나는 일은 없어 서로 기분 좋게 다녔다.  가끔 낮에 운동 삼아 동네를 산책하는데 옛날 얘기를 끝없이 반복해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지겹지만 엄마의 말이 어눌해질까봐 녹음기 틀어놓듯 그냥 흘려듣는다.  

이제 내 수업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엄마도 같이 가서 다른 수업을 받기로 했다.  잠시 멈춰진 목표 지향적인 내 삶이 다시 굴러가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엔 이른 감이 있다.  그래도 조금씩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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