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는 영감이 오면 쓰고, 프로는 아침이 오면 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대구에 맞춘 형식으로 보여주는 점도 좋고, 영감의 순간적인 번뜩임 보다 꾸준히 작업하는 습관을 강조하는 내용도 좋다. “아영쓰, 프아쓰”라는 식으로 가볍게 줄여 쓸 수도 있고, 막상 하려면 그리 어렵지도 않은 그 행동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점도 좋다. 아니, 쉽게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말이 더 좋다. 오래 전부터 내가 이 말의 내용을 실천해왔다면, 이 문장이 내게 지금처럼 울림을 주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을 스티븐 킹 작가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온 문장으로 생각했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스티븐 킹과 그 책의 제목을 같이 봤었던 때문이다. 내가 나중에라도 이 책을 읽었다면 스티븐 킹이 쓴 정확한 문장을 알았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 책을 읽지 않았고, 그래서 사실 관계 파악을 위해 지금 막 검색을 한 결과… “아마추어는 앉아서 영감을 기다리지만 프로는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 스티븐 킹의 책에 나온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고 한다.
좀 더 찾아보니 필립 로스의 소설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문장은 척 클로스라는 화가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 문장이 여러 작가에 걸쳐 인용된 까닭은 그만큼 이 문장에 많은 작가들이 공감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영감이 오고 아침이 와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프로일까, 아마추어일까. 프로도 아마추어도 아닌 세미프로? 아니면 그냥 단순한 게으름뱅이?
번데기라는 메모에서 나온 세부 설정은 강원영화학교의 지원 마감일에 맞춰 겨우 시놉시스로 쓰여진다. 세부 설정이라는 나름의 영감도 있었던 데다 아침을 지나 저녁이 와도 쓰지 않던 시놉시스를 마감일이 되어서야 겨우 써서 낸 것이다. 그것이 2024년 6월의 일이다. 시놉시스라고 써서 제출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세부적인 정보까지 담아낸 트리트먼트에 가까운 글이었다. 다소 과격한 행동을 포함한 내용 탓에 이를 읽는 이로 하여금 설득하려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긴 결과였다. 그렇게 번데기는 처음으로 전체 구조를 갖춘 이야기의 형태가 되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강원영화학교의 실습작으로 만들 규모는 아니었다. 인물과 이야기의 설정상 음악 작업이나 특수효과 등을 필요로 한 데다 강원영화학교의 일정 상 준비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이야기는 시놉시스의 형태로 다시 한동안 나의 노트북 드라이브 한 구석에 묵혀진다.
그렇게 묵혀진 이 시놉시스를 다시 꺼내게 된 때는 꼬박 해를 넘긴 2025년. 올해 초의 일이다. 관련 단체에서 진행하는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공모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