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지원 사업은 힘이 세다. 제작지원 사업은 많은 창작자의 창작 생활을 조금이나마 연장해줄 만큼 힘이 세다. 제작지원 사업은 자본의 논리로는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작품을 세상에 내어줄 만큼 힘이 세다. 제작지원 사업은 누군가의 삶의 궤도를 바꿔버릴 만큼 힘이 세다. 그것이 제작지원 사업의 힘.
이 제작기의 첫 글에서도 썼듯이 나는 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 사업으로 처음 영화를 시작했다. 일고여덟자리의 숫자를 필요로 하는 단편영화의 제작비 규모를 생각하면 이는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한 금액의 금전적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여전히 그만한 여유가 없다. 나는 여전히 제작지원 사업의 힘을 필요로 한다. 새 단편영화 작업을 위해서는 말이다.
전국의 영화·영상 관련 단체나 영화제 등에서는 매년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제작지원 사업 공모를 진행한다. 장편보다는 적은 금액을 들이면서도 해를 넘기지 않게 사업 결과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사업은 그 자체가 영화를 통한 문화 다양성이라는 사회 가치 활동의 측면을 띤다. 사업 주체와 수혜자, 그리고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 모두가 윈윈한다 해도 좋을 사업. 세상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결과물이 꼭 그 모든 기대를 채워주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 지원사업의 금액이 충분하다면 좋으련만 자원은 한정되고, 그 자원을 필요로 하는 이는 많다.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부지런히 시나리오 작업과 그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데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예산을 세워야 한다. 마감에 밀려서는 아무래도 준비에 미흡한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준비에 미흡한 부분이 생기면 경쟁에서 밀리기 쉽다.
그걸 알면서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난해 10월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 일정이 공지되었을 때부터 단편 작업을 진행했다면 준비가 얼마나 수월했을까.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확신이 드는 소재와 이야기라도 그 소재와 이야기가 이 시대에 맞는지, 제작 가능성과 제작지원작 선정이 가능할지, 그 소재와 이야기가 이후 나의 영화 작업에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 끊임없이 의심과 검증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의심과 검증의 결과로 나는 [번데기]란 작품을 하기로 결정했다. 단편으로서는 조금 큰, 3천만원 규모의 작품으로 미술과 음악 등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부분을 시도해볼만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 시나리오를 나는 세 개의 단체에서 진행하는 제작지원 사업에 신청했다. 강원영상위원회의 강원 영상콘텐츠 창작지원사업, 영화진흥위원회의 2025년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CJ문화재단의 스토리업. 마감 날짜도 비슷한 이 세 사업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