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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제작기 12] 경험의 산물

by 기은

2월 14일. 2월 17일. 3월 17일.


각각 2025년인 올해 강원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와 CJ문화재단의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한 제작지원 사업 서류 제출 마감일이다. 저 가운데 첫 공모 마감일은 잘 풀리지 않는 시나리오에 미루고 미뤄지다 겨우 마무리를 한 날이기도 하다. 다소 작위적인 결말에 하루 만이라도 퇴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지금은 이 결말이 최선이라는 위안을 남기며 겨우 초고를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시나리오와 대략의 제작계획서 등을 작성해 제출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느끼면서. 그러니까 이런 자신감. 2차 심사까지는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


내가 쓴 시나리오가 내가 느끼는 만큼 엉망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드는 자신감이었을까.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을 테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미 3년 전에 한 번 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경험에서 오는 것에 더 가까웠다. 제출한 서류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미진한 감정은 그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 점에서 인간이란 과거 경험에 얽혀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과거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현재 우리의 선택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거 경험으로부터 받은 영향 가운데 이번 제작지원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예산안이었다. 언제든 부족한 게 예산이니까 우선은 여유있게 예산안을 작성해 제작지원 사업 공모에 제출한 것이다. 그렇게 한 데에는 3년 전에 받은 제작지원의 경험이 컸다. 그때는 필요한 금액에 맞춰 작성한 예산안에서 딱 절반의 금액만 지원을 받았던 것이다. 필요한 금액을 정확하게 계산해 지원을 한다고 해서 그 금액 전체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나중에 예산안을 수정할 것을 생각해 여유있게 예산안을 작성하자. 지원한 금액의 절반 금액을 받을 경우를 생각해 애초에 최대 지원금의 두 배 금액을 기준으로 예산을 작성해도 되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각 지원 사업의 예산안을 작성해 제출했다.


바로 그 예산안 때문에 나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 사업의 1차 서류 심사에 탈락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원대상에 해당하는 예산 기준에서 벗어난 예산안을 제출한 것이다. 마감에 맞춰 시나리오와 함께 예산안까지 수정을 하다보니 그 기준안을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이렇게 올해의 바보짓과 함께 새로운 경험 하나를 적립했다. 시나리오 심사라도 받아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는 가운데 강원영상위원회의 시나리오 심사 결과 발표일도 늦어지고 있었다. 해당 심사 결과에 따라 대면 심사 여부가 결정된다. 일단은 발표 준비를 가볍게라도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쓴 시나리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만 해보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인지, 발표를 한다면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하는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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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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