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지원을 위해 준비한 5분 동안의 피칭을 마쳤다. ppt의 예산 숫자 오기입과 종료 1분 전 안내 종을 종료 종으로 착각해 마지막 발표 내용을 급하게 훑고 지나가는 등의 실수는 있었지만 이미 공은 던져버린 상황. 이제는 내가 던진 공이 어디로 나갈지 지켜봐야 한다. 그 공이 타자가 휘두르는 배트를 지나쳐 스트라이크 존을 지나 포수의 미트 안으로 제대로 들어갈지, 아니면 타자의 배트에 맞아 주자 진루나 실점을 허락할지….
“조용규 감독님을 아세요? 만난 적은 있나요?”
타자의 첫 스윙. 심사원의 첫 질문이 들어왔다. 충분히 예상한 질문이었다. 90년대부터 촬영 작업을 시작해 류승완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에 참여하시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촬영과의 전공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기여하신 분이시니까. 그 경력을 생각하면 이제 막 영화를 시작한 내가 그 분과 함께 작업을 한다는 말은 미심쩍게 들릴 만했다. 비유하자면 학부 졸업생이 전공 교수님을 지휘하며 연구 논문을 쓰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이 비유와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 학부생이 이전에도 전공 교수님과 같이 연구 작업을 한 일이 있었다는 것.
“네,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 감독님의 단편 작업이 있어서 현장에서 뵙기로 했습니다.”
“조용규 감독님과 이전에도 작업한 적은 있나요?”
“우리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은 이윤지 감독이 연출한 단편에 제가 조연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조용규 감독님께서 촬영을 맡아 같이 작업을 했었습니다. 작년에는 조용규 감독님이 연출하신 단편에 제가 제작부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연출자로 조용규 감독님과 같이 작업한 적은 없는 거죠?”
“아… 네. 아쉽게도 아직은 없습니다. 저의 경력을 생각하면 조용규 감독님과의 작업에 신뢰가 가지 않아 보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조용규 감독님과 같이 현장에서 작업한 경험이 있고, 제가 부족한 만큼 촬영 전에 철저히 준비를 할 계획이기 때문에, 감독님과 작업은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답을 들은 심사원들의 반응은 그리 수긍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장르는 바디호러가 맞나요?”
이 또한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장르에 관해 엄밀한 기준을 적용하는 분들을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보아왔기 때문에. 그 장르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이라면 그 기준의 적용은 더욱 엄격해질 테고.
“앞서 발표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영화에는 설소대 절제술이 등장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신체 훼손의 장면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바디호러적인 접근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해당 장르의 성격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바디호러예요.”
“아…, 엄밀한 의미에서의 바디호러와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이와 같은 장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해당 장르를 언급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표현을 써 죄송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다소 강한 반박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질의는 공격과 방어의 형태로 몇 분간 이어졌다. 3년 전 〈내 자전거〉의 피칭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그때는 긍정적이면서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2년 전에 겪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겪은 크리틱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그 정도는 약하더라도 충분히 날카로운 내용의 이야기들이 심사원분들로부터 나왔던 것이다.
2년 전에 겪은 크리틱에 관한 기시감은 한 심사원 분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욱 짙어져 갔다. 눈이 좋지 않은 데다 심사원 분들과 다소 거리가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멀리서나마 보이는 모습에 나는 그 심사원이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그 크리틱 시간을 함께해주셨던 분 가운데 한 분이셨던 ㅅ 교수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