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제작기 21] 아마도 내년까지

by 기은

2025년의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 가운데 내가 계획하고 목표로 했던 사업의 공모가 모두 끝났다. 결과는 모두 탈락. 영진위의 사업은 나의 지원 서류 가운데 예산서의 금액을 해당 사업의 지원대상 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쓴 탓에 서류 심사 단계에서 탈락했다. CJ스토리업도 시나리오가 부족했던지 1차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 강원영상위원회에서는 같은 시나리오를 조금이나마 고친 덕인지 2차 대면 심사까지는 올라갔지만 최종 결과는 예비 2번으로 끝나고 말았다.


예비 2번. 그러니까, 내가 지원한 시나리오가 제작지원작으로 최종 선정되기에는 아쉽고 미흡한 점이 있으나, 그럼에도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뜻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 지원 결과와는 별개로 이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한편, 천천히 다른 기회를 기다려봐야 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아마도 다음 해, 제작지원 사업 공고가 열릴 때까지…….


그렇게 한 해를 더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자비로 제작비를 충당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한 가지, 다른 경우의 수가 있기는 했다. 바로 제작지원작으로 최종 선정된 세 작품과 내 앞의 예비 1번까지 최소 두 팀이 사업 선정을 포기하는 경우의 수였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예비 2번으로서 내 작품이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될 수 있었으니까. 박찬욱 감독님의 《어쩔 수가 없다》가 생각나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다들 자기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을 터였다. 그런 분들이 최종 선정된 사업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강원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변 영화인 분들께 건너건너 이런 연락을 받고는 했다. “아쉽지만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는 내용의 연락을. 그래서, 그 좋은 기회는 언제? 이미 썼듯, 아마도 내년에….


왜 영화 제작지원 사업은 1년에 한 번, 그것도 상반기에 진행이 될까. 영화제만 해도 열리는 기간이 상/하반기 모두 고루 분포가 되어 있는데, 영화제만큼이나 영화인에게는 중요한 제작지원 사업은 왜 이런 식으로만 진행이 될까. 상반기와 하반기, 나눠서 진행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참 좋을 텐데…. 이유는 안다. 회계 연도를 넘기지 않고 지원 사업으로 배정된 예산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한 해 사업으로 배정된 예산은 원칙상 당해 회계 연도를 넘길 수 없다. 그럴 경우 회계 결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지원 사업 예산 또한 그 해 안에 예산의 집행과 결산이 완료가 되어야 한다. 상반기에 해당 사업의 공모가 진행되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 해 동안 촬영에 후반작업까지 마쳐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확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제작지원을 주관하는 기관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제작지원 사업을 받은 국내의 단편영화들이 비슷한 계절감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다들 비슷한 시기에 촬영이 이뤄지기 때문에. 촬영 진행 시 참여 인력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이러한 경향성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특정 계절을 배경으로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나 또한 시나리오 작업 등을 미리 해뒀어야 했다. 제작지원 사업의 공지가 뜬 뒤에 작업을 시작할 게 아니라, 사업 공지가 뜨기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뒀어야 했다. 가을 추수를 위해서는 모내기를 해야 하고, 모내기를 위해서는 미리 모판에 모를 심어 길러야 하듯이 말이다. 그랬다면 제작지원 사업의 예산 안정성 같은 핑계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지난 정권에서 지역 영화제 예산을 완전 삭감했던 일이 있었다 해도 말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나는 강원영상위원회의 창작지원 사업 담당자 님께 메일로 내가 공모에 접수한 작품의 심사평을 받을 수 있을지 여쭤봤다. 앞서 썼듯이, 제작 지원 결과와는 별개로 이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한편, 천천히 다른 기회를 기다려보기 위해서. 언제까지? 아마도 내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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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주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혹시나 기다리셨을 분들께는 아무쪼록 양해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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