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우리와 참 많이 닮았구나(2)
알람 소리가 들린다. 피로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이른 아침이다. 허기를 채우려 식탁에 가보니 식어버린 빵 하나가 놓여있다. 식어버린 빵을 대충 입에 넣고 나갈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학교로 간다. 오전에 있는 두 개의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간다. 점심 식사는 사치다.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도, 넉넉한 돈도 없다. 도서관에서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는 자격증 시험을 공부한다. 오후에 남은 수업 하나가 끝나면 알바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간다. 고된 일을 하다가 보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한참 일이 바쁠 때 손님 한 명이 항의를 한다. 대충 들어보니 진상이다. 논리적으로 대응해보지만,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몇 분 동안 실랑이가 계속되자 사장이 온다. 난 분명 잘못한 게 없지만, 어느새 머리를 숙인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먹을 것을 찾는다. 아무것도 없다. 근처 빵집으로 간다. 2개의 빵을 산다. 하나는 지금의 허기를 채우고 사라진 빵이, 하나는 내일의 허기를 채우는 식어버린 빵이 될 것이다. 요즘의 습관이다. 돈도 없는 데다 식욕도 없어서 그저 별 맛없는 빵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담배와 술은 끊은 지 오래다. 빵을 꺼내 먹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어떤 사람이 급하게 뛰어온다. 부딪힌다. 들고 있던 빵이 떨어진다. 그 사람은 담배 연기보다 빨리 사라질 사과 한마디를 내뿜고 다시 뛰어간다. 사과해도 빵은 달라지지 않는다. 빵을 줍는다. 집에 돌아와서 주운 빵을 쳐다보고 지갑을 열어본다. 먹는다. 반 틈쯤 먹고 빵을 내려다 놓는다. 쳐다본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온다.
환멸이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한때는 공부가 정말 많은 가치가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이롭기는 무슨, 나 하나 먹여 살리지도 못하는 게 공부다. 수업을 왜 들을까? 재밌지도 않고 열심히 듣는다고 해서 시험 결과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시험 결과가 잘 나온다고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왜 사는 걸까? 사실 삶이 아니다. 발악이다. 왜 발악하는 걸까?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시간을 발악해온 듯하다. 그런데 남아있는 것이 없다. 친구도 연인도 없다. 돈이 남아있지도 않다.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도 이제는 없다. 힘들 때마다 돌아보고 힘을 얻을 추억도 없다. 당연히 명예, 명성도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능력이라도 생겼을까? 만약 있다면 약간의 지식이지만 혼자만 가진 지식은 바닥에 돌멩이보다 쓸모없다. 이게 몇 년간 발악의 결과다. 앞으로 더 발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웃음이 끝나자 다시, 허기가 찾아온다. 처음보다 많이 식은 빵을 천천히 씹는다. 그래도 내일 아침의 빵보다는 따듯한 빵이다. 얼마 전 있었던 엄마의 장례식이 떠오른다. 바닥을 향한 눈은 초점이 없다. 멀리서 뭔가가 움직인다. 바퀴벌레다. 빵을 식탁에 내려놓는다. 빗자루 하나를 들고 와 휘둘러보지만 잡히지 않는다. 결국, 약을 가져온다. 흔들어보니, 얼마 남아있지 않다.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뿌린다. 바퀴벌레는 괴로운 듯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다가 느려진다. 조금 뒤, 바퀴벌레는 뒤집힌다.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는 듯 다리를 열심히 흔든다. 그 모습이 징그럽게 보인다. 점점 다리의 속도가 줄어들더니 완전히 움직임이 멈춘다.
바퀴벌레다. 삶의 이유도 없이 그저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나처럼 보인다. 고통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저기로 뛰고 여기로 뛰어다닌다. 하지만 그런다고 살 수는 없다. 어느새 움직일 힘이 없어지면 뒤집힌다. 여전히 살고 싶은지 아등바등하며 발악한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이 일도 해보고 저 일도 해보지만 성공할 수는 없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지쳐도 일단 살기 위해 뭐라도 한다. 고귀한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을 징그럽기만 할 것이다. 나의 발악은 저 징그러운 바퀴벌레의 발길질보다 하찮은 것이다. 그리고 저 바퀴벌레처럼 징그럽게 몸부림치다 죽겠지.
프란츠 카프카는 천재다. 나의 이름, 지금부터 그레고르.1)
집을 나왔다. 바퀴벌레 사체는 놔두었다. 곧 있으면 나도 저렇게 죽어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떨어뜨린 빵 말고,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먹을 걸 후회가 몰려왔다. 한숨을 내쉬며, 택시를 탔다. 어디서 죽어야 할지 모르겠다. 적당히 강에 떨어져 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기사에게 마포대교로 가달라고 했다. 늦은 밤 시간 마포대교로 향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딱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포대교에 도착했다. 어디쯤이 좋을까 걸어가는 도중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보였다. 늦게까지 학원을 다녀오는 길이었을까? 갑자기 과거가 떠올랐다.
*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나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인물이었다. 아니, 인물이다. 평소 문학책을 좋아해서 많은 작품들을 읽었다. 특히 처음에는 낭만주의 작품들, 읽기만 해도 뭔가 알 수 없는 감동이,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지는 책들을 좋아했다. 괴테, 위고, 바이런. 뭔가 그런 작품들이 끌렸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변신』도, 『시골 의사』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나는 어려운 책을 읽으면 이해를 포기해버린다. 『신곡』도 『그리스 비극』도 모두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해를 못 했지만, 어렴풋이 말하고 싶은 뭔가가 것이 느껴졌다. 마치, 살해당하기 전 피해자가 뭔가 메시지를 남기듯이, 그걸 누군가는 알아서 범인을 찾아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카프카도 뭔가 메시지를 남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탐정처럼, 경찰처럼, 내가 그 메시지를 풀어야 할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해석된 작품을 읽는 것도 분명 의미는 있겠지만, 추측해볼 수는 있겠지만 원어를 통해서 봐야지 그 뜻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독일어를 공부하면 괴테, 실러, 횔덜린, 하이네, 릴케의 글도 원어로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독일어를 공부할 가치는 충분했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 단어부터 미친 듯이 외웠다. 하지만 영어도 잘 못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문법이나 문장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일단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가려면 독일어 말고도 다른 과목을 많이 공부해야했다. 나는 『변신』을 사서 나의 책상 위에 올려두고 힘들 때마다 그 책의 표지를 쳐다보며, 나의 의지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버스에서, 쉬는 시간에, 그냥 잠깐 시간이 나는 순간이면 항상 독일어 단어를 외우고는 했다.
카프카와 다르게 나의 부모님은 나의 이런 뜻에 동감하시고 지원해주셨다.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지원해줄 테니 그만큼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독어독문과에 입학해 대학을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셨다. 아버지는 얼마 버티지 못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원에 계셔야만 했다. 그때부터 나는 알바를 하며, 어떻게든 생활을 유지해갔다. 친구도, 연인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저 공부와 일만 해야 했다. 살기 위해서.
2년 정도 그렇게 생활하니, 도저히 모두 이룰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가 죽던가, 아니면 그걸 포기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알바를 통한 돈으로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나의 일상생활,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까지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카프카를 나의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망상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현실이었다.2)
죽기 전에 뭐라도 먹고 싶었다. 결국 다시 마포대교에서 빠져나왔다. 늦은 밤이라 술집 말고는 문이 열려있지 않았다. 술집에서 혼자 무언가를 먹는다면, 비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죽기 전에. 차라리 굶주리는 편이 났다. 갈 수 있는 곳은 편의점밖에 없었다. 편의점에 가보니, 야간 알바생이 공부를 하며, 가게를 보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열심히 공부할 때가 있었는데… 비싼 걸 먹으려고 해도 이미 입맛 자체가 값싼 음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라면과 삼각김밥 2개를 고르다가 음료수 하나도 골랐다. 계산하려던 차에 진열대의 담배가 보였다. 담배와 라이터도 샀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지만, 마지막 한 번은 그래보고 싶었다. 이상하게 술은 마시고 싶지 않았다.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바퀴벌레가 떠올랐다. 그래도 바퀴벌레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바퀴벌레는 빵도 먹지 못한 채 버둥거리면 죽었다. 난 그래도 뭐라도 먹고 죽는 입장이었다. 이게 인간의 고등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 뭐라도 먹고 죽을 수 있는 존재, 외국 감옥에 보면 사형수가 사형 집행되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을 준다고 들었다.
천천히 음식들을 씹어 삼키며, 한가지 후회가 들었다. 항상 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변신』을 들고 올 걸 그랬다. 그리하면, 나의 죽음은 문학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슬픈 비극으로 남겨질지도 몰랐다. 그러고는 책상 옆에 사체로 있을 바퀴벌레가 떠올랐다. 분명 한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한 때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는데, 정말 사람다웠는데…
변신, 바퀴벌레, 사람.
『변신』, 바퀴벌레
『변신』, 바퀴벌레,
사람, 『변신』
사람, 『변신』
바퀴벌레, 사람
바퀴벌레, 사람
『변신』, 바퀴벌레, 사람
『변신』, 바퀴벌레, 사람
프란츠 카프카는 천재였다. 방금까지의 나의 이름, 그레고르였다.3)
참 어이가 없다. 갑자기『변신』이라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천재의 작품이 나의 삶과 만나 하나의 예술이 되는 순간이었다. 가슴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고 싶다. 그 바퀴벌레가 몸부림친 것처럼 나도 몸부림치고 싶다. 그동안 믿어왔다. 난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난 한 번도 내 꿈을 위해 그렇게 몸부림쳐본 적이 없다. 나도 한 번만이라도 내가 간절히 원했던 이상에 가까이 가보고 싶다.
이렇게 나는 『변신』을 이해해냈지만, 아직 알아내지 못한 카프카의 작품은 많다. 한 작품이라도 좋다. 제발 한 작품이라도 더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 아니, 카프카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과 나의 삶이 합쳐져 예술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간절한 꿈이 다시 나의 마음에서 태어났다. 과거의 나로 다시 변신(Die Verwandlung)
편의점에서 나와 택시를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 보니 바퀴벌레의 사체가 그대로 있었다. 한참 동안 사체를 쳐다봤다. 바퀴벌레 사체를 치우고『변신』을 읽었다.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와 카프카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변신』을 다 읽고는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벌써 해가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은 학교에 갈 생각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엄마의 유골이 있는 납골당으로 갔다.
"엄마, 나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금방 가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생겼어. 기다릴 수 있지? 아빠는 잘 있어? 엄마랑 아빠 그때 나 하고 싶은 일 다 하라고 했었잖아. 아빠는 하늘에 있으면서 엄마는 병원에 있으면서 내 모습을 쳐다볼 때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 아들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꿈 이루어야 할 텐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지? 미안해 하지마, 나 다시 그 꿈 이룰거니까, 다시 살 거니까. 나 살고 싶어, 이게 단순히 저 벌레의 발악보다 못하다고 해도, 발악할래.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징그럽게 보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리고 엄마, 아빠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잘 기다리고 있어. 꼭 내가 하고 싶은 일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해보고 적절한 때가 오면 그때 엄마, 아빠 있는 곳으로 갈게. 사랑해."
1) 프란츠 카프카,『변신』
2)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3)『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