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본 것은 종로에 있는 한 갤러리에서였다.
사흘째 집 안에 틀어박혀 취업 자소서를 쓰고 있는 것에 싫증이 났던 난 인터넷으로 갈 만한 개인전시회를 검색했다. 초가을이어서 그런지 미술계에서 꽤나 이름 있는 작가들의 전시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었다. 혹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입장권 가격을 보고 나니 생각이 저절로 접혔다.
2년째 아무 소득 없는 명문대 미대 졸업생. 지갑은 텅 비었고 메일함 속 불합격 통보만 쌓여갔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시발, 뛰어나긴 뭐가 뛰어나다는 건가. 그랬으면 뽑았어야지. 수천만원을 쏟아부으며 졸업한 미술사학과와 교수님의 꼬드김으로 얼떨결에 밟은 석사과정. 7년의 시간동안 이곳 사람들은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큐레이팅 업무는 런던이나 뉴욕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인간명품들이 꿰찼으며 미술관 행정이나 경영 역시 상경대를 졸업한 인간계산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큐레이터에게 그림을 보는 안목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안목 따위는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그럴 듯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필요한 건 인맥. 돈 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들과의 연과 이를 사줄 바이어들과의 연. 아득한 현실 속에서 동기들은 하나 둘 미술계를 떠났다. 공무원을 준비하고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어 과외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 혼자만 큐레이터 모집에 지원서를 계속하여 넣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높게 평가했다. - 그렇게 끈기 있게 계속 도전하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고. 그 응원에 감탄보다 동정이 더욱 서려 있다는 것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었다.
유명화백들의 전시회 구경은 그만두고 관람료가 저렴한 신인작가들의 전시회로 눈을 돌렸다. 카탈로그를 살피던 중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No. 3]’ 그림에는 제목이 없고 연작번호만 붙어있었다.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친 채 침대에 앉아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한 여자.
무채색 위주로 그려낸 여자와 대비되는 밝은 파스텔 색감의 방과 침대.
채 지워지지 않은 연필자국들이 주는 거친 크로키의 인상, 하지만 그 인상은 여자에게만 국한됨.
베개, 탁상시계같이 쓸데없는 배경사물들은 오히려 꼼꼼히 스케치 후 마감.
무엇보다 저 표정. 슬픔..? 분노..? 허무..? 아니야 허무보다 조금 더..텅 빈.. 공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품 스스로가 그것의 인상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 같았다. 분명 강렬하지만 강렬하지 않았고 매혹적이지만 매혹적이지 않았다.
나는 마우스휠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춘 채 액정 속 그림을 응시하였다.
그렇게 오묘한 시간이 ..5분..10분.. 난 한참동안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느끼려했다..
제정신이 들었을 즈음에는 이미 전시회의 온라인예약을 마친 후였다.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는 종로 중심가와는 꽤 떨어진 외곽.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카페가 많은 곳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마침내 예약한 갤러리에 도착하였다. 규모가 작은 단층건물, 근처의 건물들이 한옥을 닮은 것에 비해 갤러리는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단순한 양옥이었다. 규모는 어림잡아 프로 작가 단 한명만이 아슬아슬하게 개인 전시회를 열 수 있을 정도. 아마추어 혹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작가들이 전시하는 갤러리는 대체로 이 정도의 규모다. 싼 만큼 볼 것도 없다. 20000원에 고퀄리티를 기대하는 간사함에 약간의 양심이 찔리며 갤러리로 들어선 나는 급작스럽게 드리우는 어둠에 당황했다. 모든 갤러리가 밝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정도 규모의 전시회면 백이면 백, 하얀 배경과 백색광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가장 작품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프로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조도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 정도로 빛이 제거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게다가 이곳은 일류 갤러리도 아닌 일개 개인 운영 갤러리.
당혹스러움을 추스르며 데스크로 다가갔지만 방문객을 반겨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아마추어 전시회라 할지라도 안내해 줄 사람 하나 없다니. 어쭙잖은 빛의 소거로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맨 갤러리는 계속하여 다른 순서의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갈색의 원목데스크 위에는 예약한 시간과 나의 이름이 크게 써진 A4용지 한 장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17 : 00 , 채하린 - 자유롭게 관람하세요.’
괴상한 전시회 운영에 연거푸 당황했지만 이제 슬슬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 나는 A4용지를 보고도 별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어서 빨리 나를 이곳으로 이끈 그림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데스크 오른편으로 이어진 입구를 따라 들어가자 어둠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다. 띄엄띄엄 천장에 달린 촉 낮은 전구만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얼마되지 않아 길을 안내해주는 전구보다 훨씬 밝은 조명이 갤러리의 한쪽 벽면을 비추고 있었다. 인터넷에는 나와있지 않던 작가의 프로필이 거기 있었다.
-28, 김 현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졸업
미대를 졸업한 것이 커리어의 전부인 젊은 작가가 매혹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무명이긴 해도 미술계에서 꽤 잔뼈가 굵은 아티스트일 줄 알았는데, 내 또래라니.. 길게 늘어진 어두컴컴한 복도에 눈부신 조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있는 그의 그림을 비췄고 나는 그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일정한 형식이 없다는 것이 그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형식이었다. 어느 작품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사물들의 집합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방했고 또 다른 작품은 인물의 솜털까지 묘사하는 경지의 극사실주의 화풍. 어라, 이건 또 야수주의? 동일한 작가가 그렸다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화풍들은 그가 진정 아마추어가 맞는 지에 대한 의심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젋은 나이의 작가라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감탄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며 걸었고 어느새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그 끝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방이 있었다. 어찌나 큰 지 갤러리의 절반 이상을 그 방이 차지할 것 같았다.
방의 정면에는 [No. 2]가, 왼편에는 [No.1], 그리고 오른편에는 [No.3]가 있었다.
이 세 그림은 분명 인물화였다. 한 여자가 가운데에 배치되어 있고 주변 사물들이 그녀를 감싸는 전형적인 인물화의 구도. 하지만 계속해서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이것이 인물화라는 사실을 까먹을 것만 같다. 그토록 그녀의 존재감은 옅었고 배경 속 사물들은 그녀의 그 얕은 존재감조차 지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7년동안 미술을 공부하고 수많은 박물관을 돌았음에도 ‘감응’의 순간이 왔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림을 보고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 온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피식거렸다. 이 연작들은 다른 그림들과 달랐다. 그림에 묘사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숨어있었고 그 무엇은 내 가슴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어두움 속 홀로 빛나는 그림은 그 감정을 더욱 고조시켰다.
“그림이 맘에 드시나 봐요?” 한 젊은 남자가 어느샌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림에 몰두해 누가 다가오는지조차 몰랐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 남자는 옅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그림이..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적이네요”
“아 이런 그림 안좋아하시는구나.” 뒷말을 흘기며 남자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모순적이여서 매력적이에요.”
“네...?” 남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러시아에 간 적이 있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관 보러. 근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건 미술관의 그림이 아니라 그날 밤의 백야에요. 분명 밤인데. 어렴풋하게 빛이 있는 그 모순적인 장면. 진짜 예뻤는데... 이 그림들 보고 있으면 제가 다시 한번 백야를 보는 거 같아요. 모든 것이 말이 안 되는데 가슴 한편을 꾹꾹 찔러요.
“모순이라.. 정말 맘에 드는 표현이네요.”
젊은 남자는 이제서야 이해했다는 듯한 밝은 미소를 내비췄다.
“근데 지금은 제가 예약한 시간인데..?” 나는 그림에 빠진 나머지 미처 잊고 있던 그 남자의 신원에 대해 추궁했다.
“아.. 관람객 반응 좀 보려고 살짝 들렸습니다. 의도치 않게 방해했다면 죄송해요.”
20대 중후반의 젊은 남자, 갤러리에 자유롭게 출입 가능. 답은 세 개 정도였지만 직감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혹시, 작가님이세요?”
현 작가와 나는 어두컴컴한 갤러리 안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침 다음 시간대를 예약한 관람객이 없었기에 갤러리는 나와 작가의 토크쇼 무대가 됐다. 마크 양, 이동기 화백 등 유명한 현대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점차 일상적인 이야기로 넘어갔고 서로의 대학 추억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우린 서로 관심사도 비슷했으며 나이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말이 잘 통했다.
낯설지만 편안한 대화는 그렇게 묘한 기류를 타고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이야기가 더욱 무르익을 무렵, 그는 시계를 쳐다보더니 흠칫 놀라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죄송해요 하린 씨. 9시에 다른 갤러리오너랑 미팅이 있어서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가 아쉬움에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러시구나.. 이야기 재밌었어요 작가님. 앞으로도 작품활동 꾸준히 하세요. 제가 팬해드릴게요.”
농담 같은 진담을 곁들이며 내가 대답했다.
그와의 시간은 너무 재밌었다. 사실 솔직히 몇 번 더 볼 기회가 있었으면 했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나는 갤러리오너도, 바이어도, 큐레이터도 아닌 평범한 취준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예술계가 발견하지 못한 원석 같은 작가였다. 나와 그는 어울리지 않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팬 좋네요, 내친 김에 거기에 사인이라도 해드릴게요.” 그는 내가 데스크에서 챙긴 후로부터 손에 꼭 들고 있던 브로슈어를 가져간 후 자켓 앞주머니에서 볼펜 하나를 꺼내 자그맣게 끄적거린 후 돌려줬다.
“마저 둘러보고 가세요. 그럼 이만 먼저 갈게요.”
“네 안녕히 가세요.”
그가 떠나간 후 나는 [NO. 3]를 잠시동안 응시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도 그 작품과 작가가 계속 생각났다. 취업 준비를 하며 피폐해졌던 나의 근 몇 년이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코트 앞 주머니에 고이 접어 놓고 온 브로슈어를 펼쳐 책상 벽면에 붙였다.
브로슈어에는 큼지막하게 ‘HYUN’, 그의 싸인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갤러리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것이 하나 더 쓰여 있었다.
“오늘 재밌었어요. 나중에 시간 날 때 또 봐요. 010 –5543 - 0155”
그렇게 우린 몇 번을 더 만났다. 같이 미술관에 갔고 근사한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몇번의 데이트는 연애로 이어졌다.
취업은 여전히 잘 되지 않았지만 현이 나의 연인인 것이 너무 뿌듯했고 행복했다.
나는 그를 정말 사랑했다.
만난 지 6개월이 되는 날, 그는 나를 종로의 한 카페로 불렀다.
“창가 쪽 자리에 있어. 거기로 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카페에 도착했지만 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창가 쪽 자리에도 그는 없었다. 계속하여 둘러보던 찰나 가까스로 창가 쪽 테이블 위 메모지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메모를 본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1년 후 나는 간신히 한 사립 갤러리의 큐레이터 모집에 합격하였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실력 있는 신인들이 프로 작가가 되기 직전 작품을 출품하는 갤러리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대형 갤러리오너와 개인 바이어도 이 갤러리를 자주 들리곤 했다. 1년 전 말없이 헤어진 현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왜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했는 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갤러리의 하루가 끝난 후 나는 다음 달부터 새로 걸리게 될 그림들의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딱히 맘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하며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던 순간 익숙한 그림 하나를 보았다.
온 몸이 경직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지만 무엇인가 느껴지는 그림.
그리고 내가 그를 만날 때 자주 입었던 아마 그와의 마지막 날에도 입고 갔던 코트.
제목은 [No.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