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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ie et Travis Oct 27. 2024

경인아라뱃길

8

  이제 멀리서 도시와 다리들이 다가온다. 야생화단지의 동쪽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독정역을 끼고 번식한 도시개발사업구역의 서쪽 시작을 알리는 백석대교다. 산책자들로 하여금 저곳을 관전하며 휴식할 버릇을 들이도록 계획된 길의 도심화는 일종의 모방에 불과하다. 도성벽을 모방한 담도 쌓고, 그 위에 팔꿈치를 올려 쉬게 했다. 스탠리 물병의 석양에 제곱된 카드뮴 오렌지도 올리고. 뱃길의 경계를 담당해 왔던 나무 울타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공원이라 부르기도, 코스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작은 광장. 정자 하나, 편의시설 조금을 갖춘. 달콤한 치즈맛 감자칩을 사 와 정자에 앉아서 허기를 달랜다. 물론 치킨버거로 말하자면, 이 모든 비슷한 상황에서 없는 셈 치려는 물질로서의 부스러기와는 별위개념이다. 그러므로 공복이 손실될 리는 없다.

  황혼과 황혼이 비친 물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검게 변해간다. 우리는 사라져 가는 빛을 일회용 고독이라는 영합적인 이유로 추모하지 않았다. 다만 천성이 순진한 변덕쟁이인 탓에 추모했다. 안타까운 느낌은 고독에 대한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해명이지만 그것은 겉면 한 꺼풀의 반응일 뿐 심층까지 벗기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검암역의 다리, 첫 번째의 끝이자 두 번째의 처음인 그 다리까지 도달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관하여, 치킨 버거를 취식하는 것이라고 외치자! 이것은 검암역 다리 다음 순번으로 등장하는 데칼코마니였으니, 때가 되어 전체의 머리 가까이에 다시 귀환하면 이 말들을 통해 다시 주의를 받아 반짝이게 되리라고, 첫 번째의 도착인 검암역에서 예견한 바 있다.

  지금껏 찍고 넘어간 검암역들은 세 번째 출발의 검암역으로 거듭날 것이다. 세 번째 아라뱃길의 네 번째 검암역에서 우리는 격식을 깨는 선택을 한다. 최초로 치킨 버거를 먹고 출발하려는 것. 배고픔은 아직도 선명하다. 즉 두 번째의 그 걸음들과, 그 관찰들과, 다리들, 나무들, 물결, 바다, 긴긴 시간 동안 재현되고 해체되었던 하늘들에 지어놓았던 모든 관계를 설명하는 공복감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배고프기야 하지만, 이미 그때의 배고픔은 벗었고, — 그날 완전히 어두침침해지자 주문을 받는 음식점들의 조명이 유난히 번들거리는 것을 본 기쁨 후에 갑자기 — 그리고 원대한 보상의 몸짓에 의해 포만감 가득한 둥지 속으로 들어가 입지를 굳혔고, 하루는 끝났고, 그것은 이해된 날이었다. 오늘은 한 치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 그 어떤 날과도 비교할 수 없고, 이제부터 체험될 날이다.

  아라뱃길의 머리, 아웃렛으로 퇴각할 것이기에 치킨버거는 당분간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6월 끝자락, 이제 곧 7월이다. 움직임의 동기가 소강되며 그간 부어오른 종아리와 부르튼 발, 무엇보다도 불구덩이에 대한 예지가 움찔거리고 있는 시기.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탐닉하는 발들의 지속적인 원천은 탐닉 그 자체가 아니던가? 지속적인 원천이라, 그것은 이토록 천진한 것이라 불현듯 당분간 따위 운운하는 것이다. 천진한 것, 그것은 또한 이토록 사소한 일이 아니었으니, 결코 자기 원칙으로 묶어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으면서, 반대로 고장난 탐지기처럼 — 방랑자 모나의 생활이 그랬듯 — 파괴적인 탐닉의 총체도 아니어서, 오직 명령에 따라서만 천진함을 갖고 있을 수 있도록 높은 줄에 묶여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대가가 있는 자유의 범주도 아니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속의 범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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