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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May 18. 2024

나와 운동의 역사 1


나는 한눈에 척 봐도, 골골거리게 생겨먹었다. 그러나 '골골 백세'라는 말도 있듯, 그런 생김새치고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편이다. 아마 약한 몸이 스스로 조심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꾸준히 (돈 주고) 운동을 하기 때문일 것 같다. 맨 처음 돈 주고 했던 운동은, 에어로빅이다. 이젠 벌써 거의 30년 전쯤의 일이다.


학교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의 계열사에 스포츠 센터가 있었고, 거기에서 운동을 하면 직원할인을 해줬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의 열정적인 동작을 따라 하는 건 꽤나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물론 강사의 동작보다 언제나 한 템포 느렸던 나는, 강사가 왼쪽 동작을 하고 있을 때 보고만 있다가 강사가 오른쪽 동작을 하면 그제야 왼쪽을 움직거렸고, 그래서 오른쪽 근육들은 움직일 기회가 없었고, 운동을 할수록 어딘지 더 불균형이 되어 가는 것만 같아서 에어로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그다음에는 수영에 도전했다. 역시 회사에서 직원할인을 해주는 같은 스포츠 센터였다. 물에 뜨고, 음파~하는 호흡법을 배우고, 발차기와 팔 젓기를 익혔다. (내 생각에는) 평영까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수영 강사는 나를 보면서 '(안 나갈 것 같은데) 앞으로 나가는 게 신기하다'는 말을 종종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물을 휘젓는 나의 팔다리에 힘이 없어 보여서 그랬을까?


좀 더 오랫동안, 멋진 버터플라이까지 배워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직원 할인에 눈이 어두운 회사 선후배들을 수영장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겹겹이 가리고 변장을 하고 만나던 사람들을, 거의 맨몸으로 만나야 한다는 건 좀 괴로운 일이었기에, 결국 나는 수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안에서는 몇 천 원의 회비만 내면, 나머지 활동비를 지원해 주는 동호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어째서인지 등산 동호회를 매달 따라다녔다.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토요일 새벽에 전국에 있는 산에 올랐다. 어두컴컴한 산길을 오르다가 해가 뜨는 걸 보면, 기분이 참 상쾌했다. 문제는 등산 동호회원님들 대부분의 연령과 직급이, 정말 높아도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산행이 끝나면 산 아래 산채비빔밥 집에서 대낮부터 바로 음주가무가 시작되었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까지 끝나지 않았다.  


*


계속 지원하고 할인하는 싼 운동만 찾아 하니 그 모양이지.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젊고 비싼 운동들을 찾아 나섰다. 당시 인라인 스케이트가 한창 유행이었고, 나와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남편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 카페에 가입했다. 주말이면 공원에 모여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카페 회원들이 다 같이 줄지어 '로드'에 나섰다. 에어로빅과 수영과 등산으로 다져진 나였으나, 이상하게도 나의 스케이트 속도는 옆에서 뛰어가는 유치원생보다 항상 느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만히 있어도 미끄러져 내려가는 스키와 스노보드로 방향을 선회했다. 아직 학생이었던 남편은 드디어 졸업을 해 이젠 직장인이 되었고, 그리고 그 얼마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이 두 직장인은 두 해 겨울 동안 주말마다 스키장으로 달려갔다. 매번 렌털을 하다가 이젠 정말 잘 탈 수 있을 것 같아져서, 어느 날 큰맘 먹고 각자의 멋진 스노보드를 장만했다. 드디어 내 보드라니! 이제 더 이상 냄새나고 더러운 장비를 쓰지 않아도 되는구나, 감격에 겨웠다.


그러나 그 해 겨울 이후로 20년간을, 나의 스노보드는 장롱 위나 침대 밑에서 계속 잠만 잤다. 아기가 생겼고 아이 둘을 키우고 정신없다 보니, 거기 그런 게 있었다는 걸 그만 잊었기 때문이다. 이사할 때마다 깜짝 놀라며 발견해서 잠시 반가워하고 어째야 하나 매번 골치를 썩이다가, 2년 전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 결국 없애버렸다. 그때 난, 살짝 울 뻔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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