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원문과 나의 해석)
« A ce dieu, ô Phêdre, je dédie ce discours... »
« 파이드로스여, 이게 바로 내가 신에게 헌사하는 언설이네. »
On ne peut donner du langage (comment le faire passer d'une main dans l'autre?), mais on peut le dédier - puisque l'autre est un petit dieu.
그 누구도 언어를 증여할 수는 없을 테지만 (어떻게 언어를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겠는가?), 그럼에도 언어를 헌사할 수 있는 것은 타자가 작은 신(神)이기 때문이다.
L'objet donné se résorbe dans le dire somptueux, solennel, de la consécration, dans le geste poétique de la dédicace ;
이 증여된 사물은 휘황찬란하고, 엄숙하며, 거룩한 방식으로 말해진 것 속으로, 헌정의 시적인 몸짓 속으로, (흡수되어) 소멸한다.
le don s'exalte dans la seule voix qui le dit, si cette voix est mesurée (métrique); ou encore : chantée (lyrique) ; c'est le principe même de Hymne.
그 목소리가 만약 율동적이거나 (운율이 맞거나) 또는 노래로 불려질 만하다면 (서정적이라면), 그런 것을 말하는 오직 그 목소리 안에서만, 이 증여물은 스스로 고양된다 ; 그런 것이 또한 찬가의 원리이기도 하다.
Ne pouvant rien donner, je dédie la dédicace même, en quoi s'absorbe tout ce que j'ai à dire:
아무것도 건네주지 못하면서도 나는,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그 안으로 빨아들이는, 헌사 그 자체를 헌사한다.
(단어와 문법)
* dédier VS donner
dédier 1. (예배당을) 헌납하다 2.(저서 권두에 헌사를 써서) 헌정하다 3.(노력을) 바치다
donner 1. 주다, 수여하다 2. 건네주다 3. 증여, 기부하다 4. (교환의 대가로) 지불하다
둘 다 '준다'는 의미지만,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 dédier가 아래에서 위로 '바치는' 형상이라면 donner는 위에서 아래로 '하사'하거나 수평적인 교환의 느낌이다.
* se résorber VS s'absorber
se résorber (의학) 혈종 같은 것이 (몸의 자율적 치유작용등에 의해) 점차 (전체로) 흡수되어 소멸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증여된 사물-물건은 형상이 없으나-보이지 않으나 정제된 방식의 말과 언어적 몸짓 속에 흡수되어 있다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s'absorber 마른 모래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형상. 나아가 어딘가에 몰두하거나 빠져있는 것까지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아직 말해지지 않은 말들마저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들어 낼(?) 헌사 속으로 빨아들이는, 모든 언어가 헌사를 향해 골몰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단상에 대한 단상)
다른 이에게 '예쁘게' 말하는 재주가 전혀 없다. 그런 데다가 누군가 내게 '예쁘게' 말을 건네 오면 기분이 좋기는커녕, 조금 소오름이 돋곤 했다. 나는 왜 그런 것일까. 오늘에서야, 롤랑 바르트 덕분에, 그 이유를 짐작한다. 그간 누군가들이 내게 건넨 '예쁜 말'들은 대부분, 헌사라기보다는 잘해야 증여였고, 못하면 사탕발림이 아니었을까. 칭찬이란 (아둔하리라 믿는) 고래를 춤추게 만들기 위한 증여품-보상이지, 결코 (고래를 전능한 신으로 드높이는) 헌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영리한 고래라면 아마, 칭찬 때문에 춤추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왜 '신'에게 헌사를 바칠까? 천국에 가려고 혹은 지상의 복을 구하려는 거래가 아닌, 진정한 헌사. 그저 단지 헌사만을 위한 헌사라면, 그게 진정한 헌사일까. 성당이나 교회에서조차 단지 '거래'만 할 줄 알았던 내가 썼던, 보내거나 보내지 않았던 수많은 연애편지를 떠올려본다. ('예쁘게' 말할 줄 모르는 나는 신기하게도, 편지는 꽤나 아름답게-유치하게 쓸 수 있었다) 그중 몇몇은 분명 헌사였다. 나 자신은 내가 쓴 편지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으니까. 고백받는 그를 떠올리면서 - 편지의 좋은 점은 그가 내 앞에 '없다'는 것이다! - 전능한 그의 기쁨 속으로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은 사라져 버리기. 그건 그 어떤 거래로도 얻을 수 없는, (결국 다른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한) 무한정한 쾌락의 도가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