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241~244
예언자는 사제가 아니다. 예언자는 말하는 법을 모른다. 선지자와 달리 예언자는 아무것도 해석하지 않는다. 예언자의 망상은 관념이나 상상의 망상이라기보다는 행동의 망상이다. 예언자는 미래의 역량들을 앞서가서 탐지한다.
Le prophète n'est pas un prêtre. Le prophète ne sait pas parler. A l'opposé du devin, le prophète n'interprète rien : il a un délire d'action plus que d'idée ou d'imagination, ... il devance et détecte les puissances de l'avenir.
* prophète 예언자, 선구자 : 자신의 저술을 당시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100년 후엔 자신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수없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던 니체 같은 사람. <<선악의 저편>>이나 <<도덕의 계보>>를 파헤친 니체는, 당시의 (기독교적) 도덕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물권'이라는 말이 없던 그 시절에, 채찍질을 당해 쓰러진 말을 부둥켜안고 울어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하니, 그는 일상적 삶의 좁은 도덕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훨씬 넓은 우주적 도덕관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 prêtre 사제, 성직자, 신관 : 신의 말을 전하고, 신을 모시는 의식을 행하며, 신의 율법을 집행하는 사람. 그의 말은 곧 신의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단지 종교적인 것뿐만 아니라, 매일 새롭게 재생산되는 (자본주의적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 devin 점쟁이, (동물) 왕뱀 : 신의 말을 다시, 삶의 온갖 구체적 상황 속에서 실질적으로 '해석'해주는 사람들. 오늘날에도 물론 온갖 점쟁이들이 많다. 특히, 들뢰즈-가타리는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모습의 점쟁이를 주의하라고 요청한다. 그들의 해석은 나를 하나의 주체, 이를테면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고정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