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는데 한여름의 기온을 보인다. 계절이 격변하고 있다. 그간의 모습은 잊고 환경변화에 맞추어 살아야 할 때에 다다른가 보다. 몸도 마음도 적응이 어려우니 애매한 에어컨만 껐다 켰다한다.
가을다운 그림을 보면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올 단풍을 기다려 본다.
개성 성균관, 약 48호, 오광호(북한),개인소장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에 가면 마음이 중후해진다. 그 시간의 흐름에 묶이어 서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축물, 고목에서 느끼는 묵직한 느낌은 시간의 힘이다. 어느 고택에 서 있는 600백 년이 넘는 향나무가 주는 시간의 무게,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소나무, 은행나무, 뽕나무 등 그 세월 속에는 인간의 삶이 같이하고 있다. 고고함의 기상을 간직한 풍경 속에서 긴 역사의 한줄기를 바라본다.
현재의 모습과 다른 그 시간의 흐름 속에 같이 존재했던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있다. 그 기운이 이끄는 힘이야 말로 시간의 축적이 만든 에너지다. 스쳐가듯 지나간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 존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역사와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광호 화백의 개성 성균관 開城 成均館 (125cm x 72cm 약 48.1호) 은 가을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풍경 속에서 그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얼마나 긴 세월을 견디어낸 고목일까. 보이는 그 자태에서 이미 세월의 흔적과 자연의 위엄을 본다. 그 거대한 고목에서 이제는 싹마저 틔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저 장관을 이룬 채 바닥 가득히 쌓아 놓은 화사한 단풍은 그저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의 역사와 그 속에서 견디어온 노련함과 우직함이 묻어있다.
그동안 이곳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몸짓마저 배어 있을 듯한, 그 이야기를 저 물들어진 잎사귀에 실어 쏟아내는 것은 아닐까. 저 거대한 황금의 터널을 그냥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장엄하다. 작가는 개성 성균관의 건물이 아니라 풍경을 통해 성균관이 지닌 시간의 흐름과 의미를 전하고 있다. 긴 역사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서있는 모습을 통해 천연의 시간 흐름 속에 오간 사람들의 모습을 반추해주고 있다. 오늘 내가 본 것을 내일은 누가 보고 있을 것인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사람만 바뀔 뿐이다. 그림은 현재의 풍경 같지만 과거의 모습이 압축되어 담겨있다. 그래서 풍경은 더 장엄한 색을 들어낸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오색 물결을 이루며 햇살에 빛을 발하는 단풍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하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 하나가 갈대숲에 그림자를 드리우듯, 가을에 보는 단풍의 물결은 매년 보아 오는 것이지만 언제나 지겹지 않은 우리들의 기쁨이다. 낙엽을 밟고 서 있으면 나도 그 속으로 스며들어 갈 듯한 강렬함에 빠져 들을 듯하지만,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고목에서 익어가는 가을 풍경은 또 다른 멋이자 가을을 알려오는 최고의 선물이다.
*개성 성균관 開城成均館 : 황해북도 개성시 방직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교육기관으로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27호로 지정되어 있다. 992년(고려 성종 11)에 세운 국가 최고 교육기관으로, 현재의 건물은 1602~161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원래는 고려의 별궁(別宮)인 대명궁이 있던 곳이었는데 유교 경전에 관한 사무를 보는 숭문전 崇文殿으로도 사용되었다가, 1089년에 국자감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특히 고려 말 개혁에 앞장섰던 신진사대부들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던 역사적인 곳이다. 조선초에 한양에 성균관을 지으면서 개성 성균관은 향교가 되었으나 그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현재는 고려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두산백과)
<오광호 작가>
1947년 5월 21일 함경북도 천진시 해방동에서 출생
1975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5년 이후 백호창작사 미술가
수년간 전문창작기간에서 미술가. 창작부 사장으로 있으면서 우수한 조선화 작품들을 많이 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