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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Apr 12. 2024

합숙으로 시작된 9개월의 현장 생활

산림엑스포 후일담 21

 

   2023년 3월 말에 춘천 사무실을 정리하고 36명의 직원이 고성 세계잼버리수련장에 설치한 현장사무실로 출근했다. 학생 수련시설인 건물 강당에 대충 사무실을 꾸몄지만, 직원 숙소가 문제였다. 여름휴가철과 가을 단풍철이 끼어있어 장기 투숙할 곳이 없었다. 지원되는 비용으로는 숙소를 구할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수련시설을 숙소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사무실 이전을 많은 고민 끝에 결정했지만, 직원들의 근무 여건은 최악이다. 사무실은 1층 강당을 사용하고 숙소는 2층, 3층과 조금 떨어져 있는 돌집을 대충 도배만하고 들어갔다. 방은 청소년들이 한꺼번에 10명씩 사용하던 곳이라 화장실 두 칸과 작은 샤워공간이 전부다. 각자 살길을 찾아 냉장고를 사고 커튼을 달고 이부자리를 들고 오고 하면서 자리 잡아나갔다.


일부 생활공간은 비가 새서 다시 빈방으로 옮기기도 하고, 하수도 냄새가 올라와 방안 가득 한 날은 환기조차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보내야 하기도 했다. 거미, 파리, 모기, 지네 등 온갖 벌레는 방안에 다 들어와 문을 열어 놓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상태다. 화장실 앞에 있던 내 사무실에도 여름이 다가오자 일주에 몇 번은 문을 열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화장실 악취가 들어와 환기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우리들의 현장 살이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집을 떠나 있는 어려움은 업무뿐 아니라 생활자체가 곤욕스러운 상황이었다. 사무실과 숙소가 위아래 있다 보니 일과 사생활이 구분되지 않는 생활로 가고 있었다. 현장에 적응하며 생활습관을 다시 적응시키는 문제도 쉽지 않았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방문과 창문 전체가 덜커덕대며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깨기 십상이고 휑하니 넓은 공간은 잠결에 눈을 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상황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


더욱이 가끔 창문을 열어도 환기가 안되어 화장실의 역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운 날에는 더더욱 슬퍼지는 날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 직원들은 평생에 겪어 볼 수 없는 후진적인 공간에서 군대보다도 더 한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10명씩 자던 집기하나 없는 휑한 방, 화장실과 방 사이에 문도 없는 구조에 냄새와 덜컹대는 철판으로 된 방문은 과거로 돌아가서 생활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시작했고 그 시간을 보냈다. 벌레부터 냄새, 바람 어느 것 하나 친근감이 들지 않는 것들이 생활의 동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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