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늘 가슴에 새겼고, 부모님의 훈계는 철저히 따랐다.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했고, 교내 대회마다 참가해 상을 휩쓸었다.
그 결과, 집에는 두꺼운 상장 파일 두 개가 꽉 찰 정도로 수많은 상장이 쌓여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똑똑한 아이’,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으로 불렀다. 나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 항상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었던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나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참 불타오르던 의욕은 점차 시들해졌고,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과 피로감이 엄습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몰랐던 시절이지만, 아마 그때부터 나는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선배였던 언니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 중3 겨울방학 때로 돌아가면 뭐 하고 싶어?”
언니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음… 선행 공부도 좀 하고, 그리고 신나게 놀 것 같아.”
그 대답 중에 내 귀에 들린 건 오직 하나였다.
‘신나게 놀 것 같아.’
나는 선행 공부라는 단어를 애써 흘려버리고, 내게 필요한 건 충분한 휴식과 자유라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겠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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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입학과 낯선 공기
새 교복을 입고 처음 고등학교에 발을 디딘 날, 나는 낯선 분위기와 공기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른들이 말하던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여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억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들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교내 대회에 참가했던 날도 기억난다. 그동안 대회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수상을 놓쳤다. 낯선 패배감과 당혹감에 멘붕이 왔다.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있다니…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마음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말했다.
“엄마, 아빠. 나 속은 것 같아. 이럴 거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상처만 남겼다.
“그게 무슨 말이야!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공부한 게 다 도움이 되는 거지!”
나는 울면서 대꾸했다.
“아니야! 고등학교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며! 왜 그런 걸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
하지만 그때 부모님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태도로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더 이상 내 억울함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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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그리고 공부와의 거리
이 사건은 내게 치명적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꼈고, 점점 더 공부에서 멀어져 갔다. 번아웃으로 인해 지친 마음은 몸으로까지 전이되었다.
부모님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감정,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항해야겠다는 다짐이 점점 커졌다. 그렇게 나는 공부를 내려놓았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해서 불안감이 소용돌이쳤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내가 이러다 정말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러나 그 불안조차도 어딘가 모르게 무뎌졌다. 목표를 잃은 삶은 방향을 잃은 나침반처럼 표류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내가 과연 나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대회의 상장은 먼지 쌓인 상장 파일 안에 잠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인정과 칭찬만을 위해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끈이 끊어지는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는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