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일하는 공장에 딸린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다. 두 개로 나눠진 건물은 단층이었고 3미터쯤 떨어져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한 동에 세 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모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주택에서 내 또래의 아이라고는 오빠하고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늘 심심하였다. 오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어딘가로 나가 버렸고 낮동안 주택은 온통 텅 비어 있다. 엄마는 집안일 외에 거의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하면서 얼마간의 돈을 벌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나는 엄마 옆을 맴돌다가 심심해지면 엄마를 졸라 동전 하나를 얻어 슈퍼로 향했다. 대문을 나오면 동네 안으로 이어지는 하얀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멀지 않은 곳에서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가 들렸다. 지칠 때쯤 슈퍼는 거기에 있었고 슈퍼 안은 바깥보다는 조금 어둑했다.
슈퍼에서 나는 언제나 우유부단하였다. 흥미를 끄는 것이 너무나 많아 근심이 한가득 이었다. 누군가 그런 나를 봤다면 그냥 가만히 서서 이것과 저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었겠지만 사실 어린아이의 작은 머리에는 온갖 번뇌로 가득했다. 그러다 최종 두 개로 선택지를 좁혀나갈 수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동전의 한계를 알고 있었고 다시 먼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간다고 해도 엄마에게 다른 동전 하나를 얻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날 주인아주머니는 가게에 딸린 살림집 안에서 방심하고 있었다. 사실 아주머니는 거의 언제나 나 혼자 가게 안에 있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그날따라 선택은 너무나 어려웠고 두 가지를 다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대담하게 나를 유혹했다. 나는 얼른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하나에 대한 값을 치르면서 시치미를 뗐다. 마음이 무척 떨렸는데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이 내 생애 처음 훔쳐본 기억이다.
나는 들뜨고 무서운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주머니에 있는 완전한 구 모양의 풍선껌 하나가 얌전하게 있는지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들킬 것에 대한 염려는 줄어들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 두 개를 얻어내는 것에 마침 성공했으므로(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이제 나는 집에 돌아가 그것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기쁘게 집에 도착했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엄마를 속일 수 있었다.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발각되어 다시 내 발로 슈퍼에 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서 구석으로 들어가 너무나 오랫동안 꾸물거리는 것이 엄마의 눈에 이상했던 것이다. 나는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기고는 너무나 오랫동안 오물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가만히 다가와 무엇을 하고 있나 살펴보니 뭔가를 먹고는 있는데 손에는 아직 새것으로 보이는 어떤 것이 쥐어져 있었다. 엄마는 종류가 다른 두 가지를 발견했고 상황을 파악하고는 “가서 사실대로 말해야지.”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문제를 엄마와 단 둘이 해결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삼자대면을 원하고 있었다. 엄마의 부드럽고 단호한 태도가 나로 신발을 신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슈퍼로 가는 길은 무척 짧았다. 나는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다. 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하게 나오자 엄마는 어떤 일 때문에 다시 아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엄마가 아주머니에게 진실을 말하는 동안 나는 엄마 옆으로 몸을 숨기고 아주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고 점점 더 부끄러워지고 있었다. 엄마는 굳이 나에게 몰래 가져온 껌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시켰다. 반항할 수 없었던 나는 엄마의 곁에서 나와 홀로 진열 선반으로 향해야 했다. 그때부터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내가 엄마에게서 잠시 떨어져 껌 봉지를 놓으러 가는 동안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웃는 얼굴과 나를 자연스럽게 대하던 행동들이 갑자기 경직되었다. 그들은 나를 비난했고 그들의 눈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더 이상 내게 친절하지 않았고 아주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나와 노는 것을 막았다. 내가 껌을 내려놓는 것으로 상황은 종결되었지만 이것으로 정말 다 된 것인지 불안해져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슈퍼에서 나오자 엄마는 이전과 다름없는 나의 엄마로 돌아와 주었다. 슈퍼 아주머니도 이전의 슈퍼 아주머니로 있어주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어떤 아주머니도 내가 그들의 아이들과 노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슈퍼아주머니가 내게 어떤 눈빛을 던질까 봐 한참을 두려워했는데 아주머니는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것처럼 내가 동전을 들고 슈퍼에 가면 전처럼 나를 가게에 홀로 내버려 두고 살림집 안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았다. 나는 넘어졌던 아이가 그 기억을 잊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느꼈던 부끄러움은 선을 하나 그었다.
선은 내게 말했다. 넘으면 안 돼. 넘으면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