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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거야 Apr 16. 2023

밤의 열정

밤의 열정


 도로 하나를 가운데 두고 엄마와 어린 오빠가 서게 된 날이 있었다.


 오빠는 맞은편에서 다른 어른과 함께 있었고 엄마는 오빠를 보지 못했다. 엄마를 본 오빠는 그저 반가워서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차 한 대가 오빠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의 눈앞에서 차에 받힌 오빠는 붕 떠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오빠는 의식을 잃었고 엄마는 오빠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무엇을 타고 갔는지, 어떻게 해서 병원까지 갈 수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고 후에 엄마는 말했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병원에서는 바로 오빠를 봐주지 않았다. 엄마는 오빠가 죽기라도 할까 봐 조급했지만 병원은 한참이 지나서야 CT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도 수납이 먼저였다. 당장 돈이 없었던 엄마는 울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아빠가 돈을 구해 병원으로 왔다. 오빠는 겨우 CT를 찍고 머리를 꿰매고 다리에 깁스를 했다. 의료보험의 해당이 전 국민 대상이 아니었던 당시여서 병원비 또한 적지 않았다. 우리 형편에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20대의 엄마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거대한 병원비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때 아빠의 공장 사장님이 나타났다.


사장님은


 “왜 이렇게 우세요. 그렇게 큰 일 아니에요.”


 위로하고 병원비 전체를 가불해 주었다. 엄마는 사장님의 출현이 마치 구원 같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빠는 가불해 준 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사장님은 야근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아빠를 남게 했다. 아빠는 새벽까지 일하고 야근 수당을 벌었다. 회사는 야근수당과 월급에서 얼마의 돈을 떼어내고 난 나머지 돈을 아빠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빠는 그런 생활을 몇 년 동안이나 이어나갔고 엄마는 부업을 시작했다.


 한편 아빠의 직장에서는 아빠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야근의 부름에 아빠가 빠지지 않는 것을 편애하는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무단히 거는 시비에 대한 감당은 아빠의 몫이었다. 아빠는 몸을 부풀리고 말을 험하게 하면서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방어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아야 했었다고 아빠는 말한다.


 나는 언제나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낮 동안 뜨개질을 하는 엄마 옆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면 엄마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쉰다. 오빠도 놀다 집에 들어오고 아빠까지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그런 것이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느낌을 주었다. 그 세상은 조금 서늘하였고 따뜻하였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나는 엄마의 주위를 뱅뱅 돌다가 마루에 나가 아빠가 오는 방향을 보았다. 아빠를 기다리던 풍경에는 캄캄한 하늘과 하얀 달과 담을 넘어온 나뭇가지의 흔들거림이 있었다. 아빠를 기다리다 스르르 잠이 드는 날이 많았고 가끔은 잠들기 전에 아빠를 볼 수도 있었다. 아빠가 오면 나는 아빠의 등과 목에 매달렸다. 아빠가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묻혀온 차가운 공기가 빳빳한 작업복에서 느껴졌다. 아빠의 피부와 머리에서는 풀잎 태우는 냄새가 났다. 가끔은 아빠가 공장 동료를 집으로 데려 오기도 했다. 엄마는 금세 상을 차려 내왔고 나는 아저씨들이 들고 온 과자나 딸기 같은 것에 홀려 있고는 했다.


 어떤 낮에는 내가 직접 아빠의 공장에 찾아갔다. 아빠의 공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쉬워서 그저 공장 쪽으로 난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 아빠보다 나를 먼저 발견한 아빠의 동료들이 “어허, 선행이 딸내미 왔구먼.” 하면서 아는 체를 하면 어두운 실내에서부터 서서히 아빠가 등장했다. 아빠는 익숙한 작업복을 입고 땀을 흘리고 눈썹은 약간 찡그리고 있다. 내가 일터에 찾아온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아빠는 이러저러한 겁을 주면서 엄마에게 가라고 하지만 나는 여차저차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는다. 그러면 아빠는 아주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주머니를 뒤지고 여기저기에 가서 동전을 더 꾸어 와 내게 쥐어주고는 했다. 그러면 나는 아빠의 주위에서 조금 미적거리다 집으로 돌아오고는 하였다. 동전에 만족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실연당한 사람처럼 집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다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이 그 차가운 기운으로 모두의 열심을 사그라뜨리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밤의 열정은 우리를 언제나 서늘하게 데워 서글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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