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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미 Mar 11. 2022

아버지와 싸리나무

빗자루가 된 아버지

 우리 집 막내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집 근처 공원 끝에 있다.

 어린이집에 가려면 공원을 가로지르거나 아스팔트가 깔린 찻길로 가야 한다. 딸이 등원하는 5일 중 이틀은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마친 후 차를 타고 등원하고, 그 외 삼일은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서 등원한다.


 삼일 동안 걷는 공원은 다시 두 갈래의 길로 나눠진다.

 잔디 위에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 길과 보도블록으로 반듯하게 닦아 놓은 길이다. 딸은 등원할 때 징검다리 길을 퐁당퐁당 뛰어 건너고, 하원할 때는 반듯하게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이 공원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여름, 겨울은 한 가지 색깔일 때가 많지만 봄과 가을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옷을 꺼내 멋을 부리곤 한다. 싱그럽고 활기차던 봄, 여름과 알록달록 아름다운 가을의 공원은 단조롭고 어두운 겨울을 위해 하나씩 그 화려함을 벗어 버린다.


 하원하는 딸과 함께 가을 색깔이 가득한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공원을 걷는다. 나도 모르게 노래 속 그 색깔을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다. 그러다 여전히 여름에 머문 듯한, 초록색 싸리나무 한 무더기가 마음에서 피어난다.


 어린 시절, 가을이 되면 학교에서는 필수 준비물을 안내했다. 편지봉투 절반 이상을 채워와야 하는 코스모스 씨를 비롯해 싸리 빗자루가 그것이다. 학교에 쌓인 싸리 빗자루는 가을의 색깔을 닮아 단 한 개도 같은 모양이 없었다.


 덜 마른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는 제법 무겁다. 어느 동네는 경운기를 이용해 각 집집마다 빗자루를 걷어 학교까지 실어다 주기도 했지만 우리 언니와 오빠는 학교까지 빗자루를 끌고 가야 했다. 언니와 오빠를 따라가는 싸리 빗자루는 여전히 초록색 잎이 무성했다. 언니와 오빠가 학교에 간 후에도 우리 집 마당 한 구석에는 아버지가 매어 놓은 싸리 빗자루가 가을 햇살을 받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을에 단단히 매 놓은 싸리 빗자루도 겨울이 되면 바짝 마른다. 칡으로 매 놓은 곳이 헐거워지고, 유연했던 가지도 꼿꼿하게 굳어간다. 그러나 마당에 눈이 가득 쌓일 때면 얇은 가지들을 모아 만든 싸리 빗자루는 강력한 제설기로 변한다. 아버지가 마당에 쌓인 눈을 쓸 때, 이 가늘고 곧은 나뭇가지들은 대동단결하여 길을 낸다.


 바짝 마른 싸리 빗자루는 단단하고 곧게 뻗어 훈육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집집마다 싸리 빗자루가 없는 집이 없었으므로 어른들의 훈육의 도구는 늘 싸리 가지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종아리를 아프게 할 싸리 가지를 꺾어와야 했다. 한겨울에는 싸리 빗자루에서 가지를 꺾어 아버지께 갖다 드렸다. 추운 날 종아리를 맞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딸의 손을 잡고 걷는 길옆의 싸리나무는 이젠 자주 볼 수 없는 아버지를 마음속에 모셔다 놓는다.

 동네에서 누구보다 솜씨가 좋았던 아버지의 싸리 빗자루.


 이제 그 싸리 빗자루를 닮은 아버지는 우두커니 한 곳에 있어야만 한다. 마당 한쪽에 늘 세워져 있던 싸리 빗자루처럼 아버지는 요양병원 침대가 자신의 마당이 되었다.


 아버지의 혈기 왕성하던 모습은 바짝 말라 건조하고 꼿꼿하게 굳어가는, 영락없는 싸리 빗자루이다. 마당 한 구석에서 들고 나와 쓸어내야만 움직일 수 있었던 빗자루처럼 아버지는 병실에서 누군가 자신의 발을 옮겨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로 면회가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간다. 그러나 나는 딸과 공원을 걸으며 싸리나무를 볼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점점 또렷해진다.


 “이 아이를 잘 키워라.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다른 자식보다 더 많은 관심으로 키워라.”


 아버지가 모든 것을 기억하던 시절,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나에게 늘 당부하셨던 말씀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딸의 손을 꼭 쥐고 공원 안의 싸리나무 무더기를 지난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마법사 흉내를 내며 그 빗자루를 타고 놀던 때가 떠오른다.

 싸리 가지로 회초리를 맞던 때가 떠오른다. 이젠 종아리가 아니라 가슴을 짓누르는 슬픔이 더 아프다.


 인생의 가을을 향해 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가 주신 회초리의 아픔도 아버지를 향한 내 가슴의 아픔도 모두가 사랑이라는 걸 알 것 같다.


 인생의 겨울에 머문 아버지, 딸의 손을 잡고 걷는 오늘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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