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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Dec 31. 2023

바우덕이와 느티나무집 할머니

서운산 산행기

룡마을 주차장이 텅 비어있고, 주변 식당들도 아직 인기척.

어릴 적에 호랑이를 두 번이나 봤다고 말씀하시던 느티나무집 할머니네도 입문굳게 닫혀있다.


할머니는 TV에 던 일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셨으며, '호랑이 울음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질 정도로 쩌렁쩌렁했고, 눈에서는 퍼런 불이 번쩍였다.'라는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하셨었다.


장작난로 옆에서 뜨끈한 잔치국수 으며 호랑이와 6.25 때 동네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재미나게 들었 기억이 .


할머니는 아직 건강하신가. 이미 돌아가셨을까. 오늘따라 할머니 안부가 궁금하고, 잔치국수 맛이 그립다. "내려오는 길에 국수 한 그릇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으며 집 앞을 지나친다.


서운산은 호랑이가 나올만한 첩첩산중은 아니지만 평야지대인 안성에서는 깊은 산골에 해당된다. 그런 탓에 조선 후기 안성지역 남사당패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기예를 연마하며 겨울을 나는 곳이었다.


안성을 대표하는 안성 남사당패도 이곳 본거지로 삼고 활동했다. 그 시절 안성 남사당패에는 전국적인 재주꾼 '바우덕이'가 있었다. 바우덕이는 어릴 적부터 이곳에서 춤과 노래, 줄타기 등 기예를 연마했다. 그녀는 재주가 출중했고 가는 곳마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 스타 정도 되는 인기 예능인이었다.


그녀는 15살의 나이에 안성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우두머리)가 되었고, 여성꼭두쇠라는 특성과 기예를 살려 전국 최고의 인기 남사당패로 만들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가 공연을 펼쳤고, 지친 노역자들의 고달픔을 달래준 공로를 인정받아 흥선대원군에게 옥관자를 하사 받기도 했다. 천한 광대에게 정 3품 이상 당상관들이 사용하던 옥관자를 하사했다는 것 그녀의 재주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 수 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었지만, 안성에서 '바우덕이축제' 매년 리고, 묘비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



 안성 바우덕이 노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바우덕이 사당

청룡사 앞을 지나 산으로 향하는 포장길이 길게 이어진다. 흙길로 접어드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지만, 절에 어울리지 않는 개울물 소리 들으며 은적암 방향으로 오른다.


은적암까지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널찍한 산길이 이어진다. 언덕길 따라 30분 걸으니 은적암에 이른다. 태조 왕건이 3년간 은거했다는 곳이다. 몇 해 전 본채 뒤편의 나무가 쓰러져 파손됐던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몽골의 전통주택 게르처럼 생긴 팔각형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이곳을 지날 때면 늘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쉬어 가곤 했다. 뜰 앞으로 보이는 감나무에 홍시가 달린 모습이 기억나는데, 오늘은 감이 안 보인다. "까치가 모두 먹어치웠을까. 추위에 저절로 떨어졌을까." 혼자 상상해 보지만, 시기적으로 홍시가 붙어 있을 때는 훨씬 지났다. 이미 눈이 몇 차례 내렸으니, 감이 붙어 있을 리 만무하다.


한 숨 돌리고 다시 일어선다. 가파른 언덕길이 이어지고 정상능선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탕흉대로 가는 갈림길 앞에 이른다. 왼쪽으로 가면 탕흉대 곧장 오르면 정상이다.


서운산 끝자락에 위치한 탕흉대에 서면 평택과 안성방향으로 막힘이 없어 조망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가 본 적이 없다. "탕흉대에 한 번 가 봐야지" 올 때마다 생각만 했지만, 되돌아와야 하는 길이라 좀처럼 발길이 가지지 않는다.

"다음에 올 때는 아예 탕흉대를 목표로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후 헬기장처럼 생긴 널찍한 전망대에 이른다.

평평한 곳 끝자락에 서니 청룡마을과 저수지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편으로 금북정맥이 길게 뻗어있다.

날씨가 풀리 산행객들이 빙 둘러앉아 도시락 까먹기 좋고, 밤하늘 별과 함께 텐트 속에서 하룻밤 보내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전망대

다시 능선길 따라 몇 발짝 걸으니, 왼쪽으로 정상 테크가 보이고, 주변으로 평상들이 널브러져 있다. 여기는 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막걸리 냄새가 진동을 하는 산 위의 주막촌 같은 곳인데, 막걸리병 대신 하얀 눈이 평상 위에 펼쳐졌다.


정상데크에 올라서니, 안성시내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인다. 하늘은 찌뿌둥하지만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이 맛이 사람들을 산으로 불러 올리는 마력일 것이다. 오늘은 나도 그 마력에 이끌려 서운산까지 왔다네....

서운산 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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