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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제니 Oct 13. 2021

새로운 삶 구축하기 프로젝트 2

밴쿠버에서 새로운 친구 사귀기



룸메이트


(엄연히 말하자면 하우스메이트지만 편의를 위해 룸메이트라고 하겠습니다.)


노스밴쿠버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후 집주인 언니와 조금씩 친해지면서 옆방에 사는 룸메이트 친구에게 관심이 갔다. 우리는 같은 화장실을 셰어 했기 때문에 평소 사서 걱정하고 남에게 피해 끼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는 혹시나 화장실 사용시간이 겹쳐서 친구에게 피해가 갈까 봐 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방에 있는데 방 밖에서 인기척이 나기에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살짝 방문을 열었다. 처음으로 옆방에 사는 친구 얼굴을 제대로 본 날이었다. 그때 뭐라고 했었더라. 혹시 화장실 사용 언제 하느냐고 물었던가, 어쨌던가. 그때 친구의 화장실 사용시간을 알았고 나는 최대한 친구와 겹치지 않게 화장실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사는 삶 서로서로 피해 주지 않고 살면 좋으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는 3살 연하의 동생이었고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비슷한 점이 많아서였을까,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처음 함께 다운타운 나들이를 갔을 때가 기억난다. 길을 모르는 나를 데리고 밴쿠버 다운타운 도서관도 구경시켜주고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Medina에 갔었다. 당시 Can I get~ 따위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나는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계속 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의지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부담이 되었을 텐데도 동생은 그런 내색 하나 없이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Medina 에서 함께 먹었던 브런치


내가 꿈꿨던 '새로운 나'는 동생과 함께 사는 동안 85%는 성공했었다. 게으르고 집밖에 몰랐던 내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동생을 만나 함께 러닝도 하고 쇼핑도 가고 했다. 일 때문에 힘든 날이면 하던 일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나를 위로해주었고 누구보다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아직도 나는 그때 그 순간에 동생이 없었더라면 캐나다 밴쿠에서 이렇게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몇 번이고 무너질 뻔한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밤의 노스밴쿠버를 함께 걸으며 동생과 나눈 대화가 다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솔직히 나도 나 스스로가 답답해서 싫을 때가 많았는데 동생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 한 번도 나를 탓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이해와 공감 그리고 위로'를 해준 사람이 동생이었다. 그녀는 채찍이 아닌 당근이 필요했던 나에게 항상 당근을 준 사람이었다.


이후 각자 가는 길이 달라 이사를 가고 함께 살 수 없게 되면서 일상에 치이고 같이 살 때보다 자주 만나기가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간이 날 때마다 만나 특별한 날을 함께 보내곤 한다.(❤)



우밴유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


어느 날 다음 카페 우밴유에 친구를 찾는다는 글을 썼다. 온라인을 통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조금 무서웠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새로운 나'에 한껏 미쳐있었기 때문에 '쿨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발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여럿 달린 내 글을 확인했고 나는 그중에서 같은 성별을 가진 한 사람을 선택해 그녀가 남긴 카카오톡으로 '쿨 한 척'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우리는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꽤 오랫동안 카카오톡을 통해서만 소통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동갑인 데다 밴쿠버에 온 시기도 비슷하고 여러모로 통하는 게 많아 금방 친해졌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나에게 동갑의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었고 이후 또 다른 친구를 소개해주면서 밴쿠버에서 동갑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나와는 달리 활동적이고 넓은 대인관계를 가진 그녀의 성격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Granville Island를 갔던 날이 기억난다. 나는 그랜빌 아일랜드라는 이름 때문에 그곳이 멀리 있는 섬일 거라고 생각했고 잉글리시 베이, 킷칠라노 비치같이 버스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 가 볼 엄두도 안 내고 있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가 함께 그랜빌 아일랜드를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이미 그랜빌 아일랜드를 몇 번 다녀온 그녀가 그날 나의 '일일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도 버스를 타고 그랜빌 아일랜드를 가 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와 같이 그녀도 '처음'하는 경험인 것이다.


진짜 '여유'를 느꼈던 그랜빌 아일랜드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그랜빌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긴 다리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멀리 보이는 그랜빌 아일랜드를 보며 공장단지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진짜 시멘트 공장이 있는 그랜빌 아일랜드


여유가 넘치는 그랜빌 아일랜드를 함께 걸다가 가장 먼저 유명한 Public Market 안으로 들어갔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파는 청과물 가게도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갓 구운 빵을 파는 빵집, 고기, 생선 등 없는 게 없었다. 한국의 작은 지하쇼핑센터 같은 느낌?


그랜드 아일랜드-여유=0


우리는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들고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밴쿠버를 마음껏 즐겼다. 게다가 누군가의 버스킹 소리는 멋진 풍경과 딱 어울리는 음악이 되어주었다. 정말이지 그가 노래를 너무 잘해서 공짜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다.


다시 밴쿠버로 돌아오는 길에는 또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버스가 아닌 수상 택시(?)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타야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문제는 수상 택시에 탑승한 이후 발생했다. 당시 같은 '영어울렁증'이 있었던 우리는 수상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가 말을 꺼내자마자 동시에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Oneway or 블라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었는데 바짝 긴장했던 터라 영어가 더 안 들렸고 우리는 당황해서 몇 번을 되물었다가 마침내 편도냐 왕복이냐라는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식은땀 나는 상황을 모면하고 무사히 예일타운에 내린 우리는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힘이 쭉 빠져 곧장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이 일을 정말 웃픈 일이었다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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