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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Apr 18. 2023

감기 돌림노래

친구랑 만나기로 한 약속을 3주째 미루고 있다.


벚꽃은 지고 라일락이 피었다. 어느새 형형색색의 영산홍들이 만발하고 있는데 집에만 있다. 꽃가루 때문일까. 일교차가 커서일까. 미세먼지 때문일까. 

봄의 불청객, 감기 돌림 노래가 시작됐다.


시작은 막내였다.

36개월이 안된 막내는 자주 그렁그렁 콧소리를 내며 코를 훌쩍인다. 태어날 때부터 코가 막혀 숨을 잘 쉬지 못해 젖을 물고 코로 숨쉬기를 힘들어하던 아이다. 병원에서는 비염이라고 별 방도가 없다 했다.

이번에도 그냥 코만 훌쩍이는구나 싶었다. 줄줄 흐르는 콧물의 짝꿍 기침이 따라왔다.

토요일 대기번호 52번 번호표를 받고 소아과로 갔다.

콧물만 흐르는 게 아니었다. 중이염도 함께였다.

태생이 낙천적인 아픈 티가 안나는 귀여운 아가라 안쓰럽다.


그즈음 나도 으슬으슬 몸살이 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며 얼른 약 한 알을 먹었더니 금세 괜찮아졌다.

역시나 주말이 지나자 세 아이 모두 코를 훌쩍인다.

코 막힌 애, 코 나온 애, 목 아픈 애 증상도 여러 가지다.








아이가 아프면 올라오는 죄책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부모의 유전인 아이의 비염은 훌쩍이는 코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 들쑥날쑥한 온도에 옷을 잘못 골라 입혔나 싶어 옷장을 헤집어 본다. 집이 더러웠나 싶어 괜히 한바탕 청소기도 돌렸다.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틀 후 더 이상 열이 나지 않는다.  

이제 끝나는가 싶더니 내 차례가 왔다. 방심했다. 괜찮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어찌나 기침이 나오는지, 기침을 하다 복근이 생겼다. 필라테스를 해야 코어가 생기는 줄 알았건만 생활형 근육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육아 동지 신랑에게 당신만이라도 살아남으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비껴가지 않았다.

혼자 괜찮다며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시커먼 얼굴색을 드리우며 갑 티슈를 끌어안고 코를 훌쩍였다.




너도 나도 주고받는 바이러스 속에 싹트는 가족애 따위는 필요하지 않는데, 왜 자꾸 바이러스는 우리 집에 맴도는 걸까.


2주째 주말, 끝났다 생각했는데 막내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컹컹 거리는 강아지 소리 같은 이 기침은 후두염 기침이다. 기도가 좁아지면 위험하다는 쌕쌕거림이 늦은 밤 공포로 다가왔다. 뜬눈으로 보초를 서며 여차하면 응급실행을 하리라 각오하고 지켜봤다.

일요일이지만 밤새 하던 기침이 걱정돼 병원으로 갔다. 8시 30분쯤 도착했지만 번호표 168번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이 걱정이라는데 소아과에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사람 가득한 병원을 보니 우리 집에만 감기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 것 같지는 않다.








감기가 함께한 지 거의 3주. 살다 살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감기는 처음이다. 의사 선생님도 요즘 감기가 엄청 심하고 이상하다 신다. 구청에서도 문자 메시지로 조심하라는 이 지독한 감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든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 수는 있을까. 알 수 없는 바이러스들이 폭풍처럼 몰아치니 짜증도 밀려온다.


엊그제부터 제일 멀쩡해 보이던 첫째가 또 다니 열이 난다.  이 돌림노래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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