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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Dec 29. 2022

영혼 없이 외쳐본다.

어, 그랬구나.



인간에 대한 관심이 적습니다.

공감 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INTP형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닌 이상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습니다. MBTI를 100% 신뢰하지는 않지만, 40년 동안 풀리지 않던 미스터리가 풀렸습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이 다 우는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 저 스타를 보고 좋아하는 감정이 1도 생기지 않는가.

어린 시절 뭔가 나는 이상한 사람이구나를 느끼며 의문의 의문이었던 저만의 감정 미스터리는 MBTI 테스트를 하는 순간 해결이 되었습니다.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어요. 저 아이가 왜 저한테 상처받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근데 막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저 아이가 나와 놀기 싫은 건 저 아이의 감정이지 내 감정이 아니었으니까요. 다행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걸 보면 사이코패스는 아니더라고요.


어쨌든 MBTI 대유행 덕에 자아를 찾았습니다. 무신경한 이면들이 사이코패스가 아닌 INTP라는 말로 대변해주니 미스터리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참으로 편한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없는 INTP 아들 셋 엄마는 오늘도 철저한 학습에 의한 대답을 합니다. 마치 빅데이터에서 답을 찾아 이야기하는 A.I.(Artificial Intelligence)처럼.     

흔히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라고.


들어주는 거 잘할 자신 있어요. 원래 말하는 걸 그다지 즐겨하지 않거든요. 요즘은 아들 셋한테 꼭 필요한 말 한마디씩만 몇 바퀴만 돌려도 목이 아픕니다. 그래서 말이 더 귀찮아졌어요. 근데 말하는 것, 굉장히 자신 없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이기에 꼭 해줘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 그랬구나!"









엄마, 이 팽이는 최강이야!
어... 그래... 그렇구나!   


  

팽이.

아들 셋, 남편까지 2대 2  배틀은 필수인 남자들의 잇템은 개미지옥입니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며 챙챙챙 촤르르륵. 돌아가는 팽이만 보고 있으면 내 머리도 같이 꽃을 달고 돌고 싶어요. 초등학생이 된 큰 아이가 동네 형아들 놀이터 배틀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하던 팽이 배틀 최강자가 되고 싶다는 꿈에 협조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많이 미루었다. 옛다 팽이. 조르고 졸라 얻어낸 보물 같은 팽이들은 매일 돌아갑니다.

처음엔 팽이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거슬렸습니다. 쇠붙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나는 낯선 소리에 귀가 아파왔고, 팽이 돌아가는 소리가 날 때마다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불꽃파이아, 내 안에 화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일으키며 꿈틀거립니다.


장난감 다 갖다 버리기 전에 얼른 치워!!!   
 


저도 사람인지라 저런 말 가끔 합니다. 애들한테 화풀이하면 안 되는데 치우지 않고 실증난 장난감들을 보면 어쩔 수 없는 그 마음, 잘 아시잖아요. 한철 장사인 장난감들 잘 사주지 않는 엄마는 장난감을 안 사줘서 세상에서 제일 밉다는 아들이 팽이 배틀 중입니다. 엄마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 팽이 돌리는 아들 셋의 귀.


쓰리, 투, 원! 팽이 배틀

쓰리, 투, 원 고~~~~~~~!!! 슛~~~~~~~!!!

팅팅팅 티티티티팅 탱탱탱탕탱탕 탱탱탱탱

퐈이아 가라!!!!!!!!!!!!!!!!!!!!!!!!!!!!!!!!!!!

     

포효하는 짐승들이 외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격정적으로 팽이를 향해 외칩니다.

오늘도 벌써 1시간째.

보지 않고 듣지 않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저 애들끼리 잘 놀면 나만의 자유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철없는 엄마입니다. 아들 셋을 낳은 계획이 다 이런 거라며 날 찾지 않는 남자들아 잘 살라며 입꼬리 실룩거립니다.


그것도 잠시, 최강 팽이라고 서로 외치며 배틀을 하다가 둘째가 또 달려옵니다.     

"이게 이겼어! 얘가 최강이야!"


철저히 학습된 A.I, 들어는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대답하고 있다는 공감의 표현으로 얘기합니다. 팽이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닭살처럼 돋아나는 신경세포를 진정시키며 영혼 없이 외쳐봅니다.    


 

"어~어!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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