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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독성 Apr 28. 2023

소나기 쏟아지던 날, 고마움 한 방울

우산에 구멍이 나있다. 물건을 버리는 습관을 가진 신랑을 탓하며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그 아저씨가 준 우산이지?
아... 이게 그거구나.
이제 낡았으니 버리자.



오해였다.

이 우산은 세월의 흔적이 갉아먹은 그냥 낡은 우산이 아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시절 2021년 6월. 7살, 5살, 2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는 겁이 났다. 계속 집, 집, 집.

집돌이 집순이도 더는 못 버티겠다며 바깥공기를 마시자 했다. 산책이라도 나가려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집 근처 성북천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2살이지만 돌도 안된 아기는 유모차를 타고 신나게 성북천 산책을 갔다.

간만의 나들이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바깥 경치에 이끌려 가다 보니 보문역 성북천에서 시작한 산책길은 어느덧 성북천 끝자락 성북동 앞에 도착했다.

해도 뉘엿뉘 지려하고 배도 고픈 것 같다. 갓난아기까지 데리고 코로나 속에 외식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햄버거 가게가 보인다. 햄버거를 포장해서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이, 빠른 걸음으로 햄버거를 사러 갔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거뭇거뭇한 구름들이 순식간에 몰려온다. 불안한 마음에 그냥 먹고 갈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코로나는 불안하다. 햄버거 가게 1층에는 의외로 사람이 없었다. 먹고 갈까. 아니다. 그냥 집에 가서 맘 편히 먹자.

먹구름이 어슬렁어슬렁 자리를 바꿀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주문이 밀렸는지 아직도 음식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마음에 심장이 쫄깃쫄깃 해진다.

띵동 소리와 함께 햄버거 쇼핑백을 얼른 낚아채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햄버거 가게 문을 열자마자 한 방울 맞았다. 톡.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불러 얼른 가자며 재촉한다.

길 건너 신호를 기다리는 택시가 있다. 저것만 타면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다.


아. 뭔가 불길하다. 택시가 다른 방향으로 간다. 우리를 못 본 것일까.


톡 톡 톡 톡 톡

토토토토토토토토톡 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투 툭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나기다. 소나기 일까. 소나기겠지.

다시 햄버거 가게로 들어갈까.


택시가 없다. 이 자리는 아닌 듯하다. 큰 사거리에서 좌회전, 우회전을 할지도 모를 일이니 좀 더 내려가 택시를 찾기로 했다.

길을 건너는데, 한대가 지나간다.

꼭 이럴 때는 반대편에 택시가 많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빈택시 표시는 사라져 버렸다.

주유소 옆 큰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비 맞는걸 극도로 싫어하는 첫째는 왜 택시가 없냐며 투덜거린다.

둘째는 역시나 졸음이 밀려온다.

셋째는 뭣도 모르고 안겨있는 모습이 짠하다.

아기띠에 유모차까지 들고 있는 신랑의 모습은 더 짠하다.


택시 앱은 빈택시가 없다는 메시지만 자꾸 보낸다.

아이들이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이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다섯 가족 옹기종기 사이좋게 비 맞은 생쥐꼴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뭉쳐 떨어지기 전에 어서 택시가 와야 할 텐데.

천둥 번개가 칠 때마다 조바심이 쿵쾅거린다.





그때, 까만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설마 우리를 태워주시려는 건 아니겠지.

중년의 아저씨 한분이 트렁크를 열어 우산 하나를 꺼내 건네셨다.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구나. 연신 감사합니다 허리 숙여 인사했다.

택시가 나타날 때까지 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우산 하나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행운이 행운을 불러오는 것일까. 몇 분 뒤 빈 택시가 나타났다.







 

고생 끝에 낙이 온 그날의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추억을 남겼다. 요즘도 가끔 성북천을 지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첫째는 그날의 일을 이야기한다. 다시는 성북천에 안 가겠다고. 비를 쫄딱 맞았다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아저씨가 우산을 줘서 우리는 살았다며.


한동안 자동차 트렁크에 그 우산을 싣고 다녔다.

혹시나 그분을 만나면 돌려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서.

혹시나 그때의 우리처럼 우산이 필요한 이가 있을지 몰라서.


우산의 작은 틈새가 세월을 못 이겨 큰 구멍이 되어버린 줄은 몰랐다. 이제 그날의 고마운 기억은 추억으로 남기고 구멍 난 우산이랑은 작별해야겠다.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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