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동그랗게 갈색으로 구워진 팬케이크, 촉촉한 달걀물을 듬뿍 머금은 달콤한 프렌치토스트, 칼집 쏙쏙 잘 내어 육즙 가득 터지는 구운 소시지, 신선한 야채들이 살아있는 상큼한 샐러드. 여러 가지 멋들어진 음식으로 합쳐진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그리고 꼭 빼먹지 말아야 할 아메리카노.
아침과 점심 어중간한 시간에 먹는 아점. 아줌마들이 애들 등원시키고 우르르 몰려가 수다를 먹는 브런치 카페. 잘 먹고 다녔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애들 없이 먹어보려고 돌아다녔다. 혼자 맛을 음미하고 싶었으니까. 어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음식을 맛으로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싸돌아다녔다.
근데 좀 식상해졌다. 브런치.
애들도 이제 커가고 한가하게 브런치만 먹으러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아들 셋 커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 집 엥겔 지수는 조만간 궁핍 지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가뜩이나 많이 먹는 엄마는 자신을 능가할 세명의 아들 식비로 인해 머지않아 집안이 거덜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그러나 아이들이 없는 10시부터 3시 사이에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애 셋을 맡기고 일터로 가기엔 경력이 있지도 않은 무경력, 그냥 단절녀. 애 셋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을 하기엔 베이비시터 월급이 더 나가는 최저 시급 단기 노동자.
가을, 신춘문예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상금 300. 왜인지 모르겠으나 행운 또는 요행을 바랐나 보다. 몇 년 전에도 신춘문예 광고가 눈앞을 배회했었다. 끄적여놓은 시 몇 편은 접수도 못해보고 컴퓨터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다시 꺼내 본 그것들은 먼지 뭍은 쓰레기. 시의 시자도 모르면서 시를 쓰겠다는 자체가 웃기는 짜장면이다.
말도 안 되는 신춘문예를 포기하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찾았다. 내가 먹고 다니던 브런치!
먹을 줄만 알았던 브런치는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슬기로운 초등생활 이은경 선생님의 인스타에서 브런치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접했다. 4번의 강의를 듣고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프로젝트. 고민했다. 신춘문예가 브런치를 끌어당긴 건지, 브런치만 먹더니 브런치가 되고 싶었던 건지. 된장인지 쌈장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콩으로 메주라도 쒀보고 싶다. 물론, 백만 번 고민했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아이들과 신랑의 협조가 가능할까. 금요일 밤 9시 강의는 줌 수업이지만 아들 셋이 나를 온전히 수업에만 집중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한 달 동안 한 명이 감기라도 걸리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감기 돌림노래가 시작될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 안 그래도 바닥인 체력 때문에 맨날 소파와 한 몸이 되어서 멍 때리고 있는데, 할 수 있을까.
근데 왠지 모르게 끌린다. 브런치. 이젠 버터 냄새 질리도록 먹을 만큼 먹었으니, 브런치가 되어볼까.
지를까 말까. 돈 쫓아서 일하면 죽 쒀서 개 주고, 공부하면 잘 된다는 사주를 믿어야 하나.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닐 텐데.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마음은 정하 지를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한 날, 마감과 함께 신청 클릭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잠들어버렸다.
차라리 잘 됐다고,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어라고 고리타분한 신세 한탄을 하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나 보다. 친절한 선생님은 신청을 못한 분들이 많다며 아침까지 신청을 받아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운명, 프로젝트 막차를 탔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은경 선생님은 모든 노하우를 쏟아내 주셨다. 내어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 당당함에 존경이 싹텄다. 진정한 스승님.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분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에라 모르겠다 냅다 질러본다. 어차피 지르는 인생, 한 번 두 번 계속 못 지를까. 어차피 치러야 할 숙제를 미리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글 두 편을 써서 브런치 작가 신청에 운명을 맡겼다.
선생님은 3시간은 떠들 수 있는 가장 자신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셨다. 없다. 원래도 말을 잘 안 하는 성격, 내 얘기는 잘 안 하는 곰팡이 슬기 일보직전의 입의 소유자에게는 주제를 잡는 것조차 난감했다.
그래서 제일 하기 싫은 이야기, 가장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아 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 보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만났다. 내 안에 무언가 묵직한 것들을 덜어냈고, 비워낸 공간에는 따뜻한 감정들이 감싸주었다. 글쓰기가 오래된 상처의 까만 딱지를 떨어뜨렸다.
브런치 작가가 돼도 변하는 건 없다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진실이었다. 사람들은 그다지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고, 혼자서만 아파하던 자신만의 상처였다. 신춘문예 300만 원이 옮겨다준 브런치 작가는 누군가의 엄마, 딸, 아내가 아닌 내 자신을 찾아주었고, 사춘기 때 찾아다니던 자아 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돈 보다 더 값진 인생으로 이끌어주고 있었다. 처음 작가 신청을 하고 설레어하고 기뻐하던 소중한 첫 경험을 품으며 성장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