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이 사고 싶어 졌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의 서재라면 책장 가득 가지런히 책을 채워놓고, 짙은 오크색 넓은 책상에 노트북과 양장 노트, 만년필은 필수 아닌가. 식탁에 놔둔 노트북은 메뚜기처럼 왔다 갔다 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는 모습에 짜증이 밀려온다. 환경을 탓하는 버릴 수 없는 습성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제 겨우 글 몇 개 썼다고 작가병에 걸린 거냐, 정신 차려라!
순식간에 뇌를 때린다. 아차, 잠시 미쳤던 자리 타령에 반성하며, 초심으로 돌아가자 다짐해 본다.
초심, 글쓰기의 초심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브런치를 만난 그때였을까. 책상 없이 빌린 노트북으로 타자를 두드리던 시절, 그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터인가 글쓰기와 숨바꼭질 중이다. 분명 저기 커튼이 펄럭이는데, 없다. 장독 뒤에 머리카락이 보이는데, 또 없다.꼭 꼭 숨었다. 분명 함께 놀고 있는데 여간해선 잡히지 않던 글쓰기. 계속 이렇게 숨어만 있지는 않을 것인, 글쓰기.
글쓰기에 흥미가 있었던가. 책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작은 책일 것이다. 항상 책이 좋았다. 책 사는 게 좋았고, 서점이 좋았다. 책 구경을 할 수 있는 도서관도 좋았다. 그렇다고 많이 읽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머리가 좋거나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 그것 또한 아니다. 책이 있는 곳, 책을 읽는 것, 책을 구경하는 것, 책을 사는 것, 책장을 넘기는 것, 책을 맡아보는 것, 책을 가지는 것, 책을 느끼는 것. 그냥 좋아하며 함께 하는 것이었다. 곁에서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반려자 같은 만남을 책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냥저냥 다 비슷했을 것 같은 어린 시절, 몇 권 없던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했단다.(아마도 이건 지금처럼 넷플릭스 정주행을 하지 못해서 그랬으리라.) 책 읽기의 시작은 엄마 기억이 더 정확할 테니 그즈음이라 치고, 내가 기억하고 좋아하던 책의 시작은 만화책이다. 초등학교 5학년 엄마 미용실 옆 만화방에서 빌려보던 순정만화. 만화 잡지는 다달이 기다리며 보고, 풍선껌의 만화는 껌 씹으면서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서점에 나온 슬램덩크 신간은 그 자리에서 휘리릭 읽고 가던 길을 가던 그때가 기억난다.
대학을 와서는 도서관에 책 구경을 갔다. 말소리 없는 고요한 틈에 들리는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 오래된 책에서 풍겨져 나오는 살짝 쿰쿰하면서도 꼬릿꼬릿한 냄새 그리고 빛바랜 누런 색 까슬한 종이들. 허구한 날 까르르까르르 우루르 놀러 나다니다 어쩌다 도서관에 가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들이 반가웠다. 변하지 않는 믿음직한 사랑의 서약 같은 책.
서점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새 책들은 더 반가웠다. 아무 책이나 들어도 글자 속에 저마다 하려는 말들이 숨어있고, 어서 빨리 자신을 알아달라고 보채는 듯했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산 책도, 제목이 멋져서 골라본 책도, 저자가 유명해서 가지고 온 책도, 오늘의 마음과 닮아서 빌려온 책도 전부 사랑스럽다. 다 읽지 못한 책들도 많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도 많고, 어쩌면 세상에 모든 책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임이 자명하지만, 그저 책과 친해지고 싶다.
수많은 작가들이 글쓰기 방법을 논할 때 이야기하는 '일단 쓰라.'는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뭐라도 써놓으면 남는 인생.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돈이 남는 것 같지는 않고, 인생이 허무하다면 일단 쓰라. 흔적이 남아있는 습작들을 보고 깨달을 무언가가 생길 것이다. 쓰다가 쓰다가 계속 쓰다 보면 삶도 쓰일 수 있을 것이란 뜻이 아닐까.
그래서 몇 달 전 버려버린 일기장이 그렇게 아깝다. 쓰레기 산을 뒤져서라도 다시 펼쳐놓고 싶다. 일단 써야 하는 글쓰기의 삶을 모르던 몇 달 전 괜히 옷장 깊숙이 숨겨놓은 일기장 몇 권을 찢기도 귀찮아 쓰레기봉투에 그냥 구겨 넣었다. 왜,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걸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걸까.
별거 없는 하찮은 메모 같아 보인 걸까. 그런 일상이 하찮아 보였을까. 과거 같지 않은 과거를 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갑자기 불어닥친 걸까. 화, 억울함, 슬픔 같은 나쁜 기억들은 다 타버리고 재가 되어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고, 좋은 기억 뭉치들은 구름처럼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이미 타버리고 남은 기억의 검댕이들은 노트 위에 남겨진 쓸모 있는 글감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점점 퇴화되고 있는 뇌 언저리에 남겨진 기억에 의존해 글감의 즙을 짜내는 중이다.
일기를 하찮게 여겼다는 의미인즉, 순전히 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욕심이 났나 보다. 책을 보다가 어쩌면 잘 나가는 작가들이 부러워 쥐뿔도 없는데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허영심이 꿈틀거린 것. 글쓰기의 시작, 그 민낯을 알아차려 매우 쪽팔리는 상태이지만, 책상 같은 소리나 하고 있지 말고, 글쓰기 연습이나 잘하라는 뜻으로 빠른 태세전환에 돌입해 본다.
뭐라도 써놓고 허영심도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 빨리 가는 사람도 있고 늦게 가는 사람도 있고, 못 가는 사람도 있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 비교하는 순간 괴로움의 나락으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니, 나만의 속도를 지켜내어 가늘고 길게 글쓰기 세계에서 살아남을 참이다. 비장한 각오로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의 쪽팔린 고민이 굉장히 하찮은 거였음을 느끼게 해 줄 참이다. 100세 시대 호호할머니의 은빛 머리 곱게 빗어 넘겨 은비녀 쪽지고 허리 꼿꼿이 세우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