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독성 May 21. 2024

소금처럼 사랑할게.

몇 년째 계단에 방치된 소금 세 포대를 옮겨달란 신랑의 부탁을 받았다. 소금 값이 오른다며 몇 포대 사두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20kg 세 개를 샀다. 소금은 배송 왔던 그 상태 그대로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지 않냐며 도대체 저걸 왜 저렇게 많이 샀냐는 투덜거림과 함께 신랑이 사라졌다. 날도 구리구리한데 한 판 싸워볼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일단 일어나 소금을 담아놓을 화단 장독대로 갔다. 빈 장독 뚜껑을 열어보니 거미가 멋들어지게 집을 지어놨다. 거미를 쫓아내며 우리 집의 평화를 위해 너희 집을 뺏어서 미안하다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독을 닦다 보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옛날 어머님들이 그렇게 반질반질 윤이 나게 장독을 닦는 게 다 이유가 있구나.


소금 포대를 들고 오려다 포기했다. 생각보다 무거운 소금 덩어리를 세 개나 옮기다간 허리가 아작 나고 아프다며 동네방네 난리를 칠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안 봐도 비디오다. 신랑을 불러 옮겨만 달라했다. 한 개를 가져오고 나머지 소금을 옮기는 사이 잠시를 못 참고 장독 앞에 놓인 소금 포대를 풀러 잽싸게 들어 올렸다. 빈 독에 촤르르 쏟아부으니 하얀 소금들이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소금 포대 들어 올린 장사 마누라의 모습을 보고 신랑은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들켜버린 나의 힘을 다시 누그러뜨리며 2개는 부탁한다 했다. 소금 포대를 번쩍 들던 힘으로 오늘 싸우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했다. 9년을 함께 살았더니 눈치껏 적당히 싸움을 서로 피한다. 장독 가득 담긴 반짝이는 소금처럼 우리의 사랑을 오래오래 켜켜이 쌓아가는 중이다.


장독 가득 담긴 반짝이는 소금처럼 우리의 사랑을 오래오래 켜켜이 쌓아가는 중이다.

쑥스럽지만 마음속으로나마 고백을 해볼까 한다.


'몇 년이 지나도 하얀 빛깔 그대로인 소금처럼 서로 사랑하자.'






오늘은 부부의 날이라고 해요.


장독에 담으니 더 뽀얀 소금
작가의 이전글 사연 있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