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선배에게 무대에 서면 참 예쁜데, 움직이면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꿈 많은 대학생은 좌절했고, 마음의 상처는 한동안 곪아 터질 때까지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았다. 좋아서 시작한 춤인데, 자꾸 춤이 불편했다. 못 춰도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춤이 좋아서, 춤추고 싶어서 어떻게든 무용계 안에는 있어야겠다며 지금 실기는 하지 않지만 이론 강의로 발을 걸쳐놨다.
학교에 오래 발을 걸치고 있다 보면 사라지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가시 돋친 말을 하던 그 선배도 사라졌다. 가끔 도망치고 싶을 때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무용계의 증발하지 않는 습기 혹은 있는지도 모르지만 필요한 공기 정도로 남아보려 한다.
이래저래 10년이다. 졸업하고 애 낳고, 애를 낳고, 또 애를 낳았더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첫째를 남편에게 맡기고 잠깐 세 시간 강의 갔다가 아이가 젖병 거부해서 몇 시간 동안울었고,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는 입덧과 함께 지방을 다녔고, 셋째 출산하고 조리원에서는 온라인 강의 올린다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코로나 시절 줌 수업하는 중에 셋째가 너무 울어서 쉬는 시간에 젖을 물렸다. 그렇게 시간 강사로 10년을 버텼다.
이번 학기, 대구의 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꼭두새벽 애들 학교 갈 준비 해놓고 집에서 서울역까지 1시간, 기차로 2시간, 동대구역에서 또 1시간. 왕복 8시간, 이래저래 안 봐도 뻔한 힘든 일들이 눈에 선하지만 이번에도 버텨보려 한다. 그런다고 내가 못할 것 같아? 천재 예술가는 아니지만 나는 버티기 천재이다. 나의 무대에서 계속 춤추며 날아다닐 것이다. 이 시간들이 또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