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고 브런치를 먹다 브런치를 하게 됐는데, 지금도 잘은 모르겠지만. 괜히 고맙다.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하면서 소심한 관종에게 관심받을 공간이 생겼다. 나서기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겁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무용을 하겠다고 그 난리를 친 걸 보면 운명이었나 보다. 글쓰기라는 무한한 영역으로 무대를 옮겼다. 춤출 곳이 마땅치 않아 괴로워하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지금의 이 무대가 즐겁고, 그저 감사하다.
요즘 고마워서 고맙다고 하는데 그마저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맙다는 그 말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 고맙다는 그 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다는 말은 고마운 말이고 꼭 해야 할 말이다.
살면서 고마운 사람, 귀인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흔히, 인생에서는 3명의 귀인을 만난다고 하는데 내가 만난 귀인은 누구일까.
부모님을 제외하고, 첫 번째 귀인은 지도 교수님. 엄마처럼 지금도 아껴주신다. 전생에 교수님은 나한테 죄를 지으셨나 싶을 정도로 잘해주신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 하지만 센스 없는 제자에게 많은 걸 베풀어주신다.
두 번째 귀인은 신랑. 여기서 우웩 이런 입바른 소리. 신랑이 브런치 구독자인가 보군. 할 수도 있겠다. 콩깍지가 씌어 얼굴 하나만 보고 결혼한 신랑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예술한답시고 어디 돌아다니다 굶고 다니기 딱 좋은 프리랜서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생겼다. 아직도 엄마라는 직업은 부캐처럼 낯설지만 든든하고 소중한 책임감이 생겼다. 칠렐레 팔렐레 철없이 돌아다니던 불나방이 불구덩이에 쫓아 들어가지 않도록 방지책이 되어주고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일곱... 무한.
수많은 귀인들이 삶 속에서 서로 도와주며 곁을 지켜준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도움 받을지 모르는 소중한 귀인들.
이제는 누군가의 귀인이 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나는 누구에게 귀인이 되어줄 것인가. 내가 그럴 자격 될는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