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귀퉁이에서 얻어지는 작은 행복

by Hee언니

세상엔 무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는 기쁨이 있는 사람도 있고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화가 난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정말 행복하냐고...

올여름 나에겐 너무나도 힘든 여름이었다. 1학년 때 철없이 빈둥빈둥 보내던 여름방학이 아까워서 난 알찬 방학을 보내려고 노력 중이었다. 공부도 하고 무용도 열심히 했다. 더위에 지쳐서였을까, 안 하던 공부를 해서일까... 몸은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다. 그러나 보람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또 열심히 생활했다.

방학도 다 끝나갈 8월 중순, 한 번씩 아프던 허리가 며칠 새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요즘 너무 무리를 해서 그렇겠지란 대수롭지 않은 생각으로 진료받기를 기다렸다. 초조한 마음이 길어지려는 찰나에 간호사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간단히 진찰을 한 후 X-ray를 찍고 더욱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나의 이름을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의 말은 의외였다. 허리는 괜찮은 데 고관절이 안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은 허리 전문의라며 고관절 전문의에게 한번 가보라고 한다. 다른 곳이 안 좋다... 더욱 초조해지는 말이었다.

다시 진찰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시간, 더욱더 긴장되고 걱정되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괜찮겠지... 괜찮겠지...’하면서도 가슴은 한없이 떨렸다. 진찰실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초조한 마음은 더욱 가시지가 않았다. 목발을 짚고 걸어가는 여자, 진찰실을 나오며 아이를 보고 우는 어머니... 그리 길지 않은 몇 분의 시간이 몇 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긴장된 마음을 다잡으며 진찰실로 들어가기 무섭게 의사는 표정부터 좋지가 않다. 간단히 진찰을 한 후 수술을 해야겠단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고관절이 선천적으로 빠져있어서 아픈 거라며 나중에 인공관절을 넣어야 하는 수가 있으니 지금 수술을 하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멍했다. 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수술에 대해 물어보았다. 수술을 한다는 것보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들이 있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1주일간 입원을 하고 퇴원 후에도 목발을 육 개월 정도 짚고 다녀야 하고 무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다고 하였다. 수술비 또한 만만치 않은 큰 액수였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중에 꼭 훌륭한 무용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꿈을 꿀 수 없는 걸까... 무용을 그만두어야 하나... 부모님에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에게만 나쁜 일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엄마에게 전화하는 순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서... 이럴 때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게 있을까? 잘 낳아주신 몸이 이렇게 아프니 너무 미안하다. 어렸을 때 반대하던 무용을 고집 피워한 것도 죄송스럽다.

눈물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순간에 나의 꿈이 사라져 버린 건 아닌가 나의 희망이 없어 진건 아닌가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암처럼 죽는 병은 아니었지만 나의 목표가 되었던 무용을 할 수 없다란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혹시나 오진일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다른 병원에 가보았다. 무용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병원에도 가보고 작은 아버지께서 소개해주신 병원에도 가보았다. 수술을 하라는 병원과는 달리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무용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병원의 선생님이 혹시 모르니 고관절에 대해 전문가인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이 분이 수술을 하라시면 정말 해야 하는 거라고...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괜찮을 거라는 그 한마디가 작은 희망이 되었다. 또다시 반복된 진료시간 기대 반 초조함 반으로 진료받기를 기다리고 X-ray를 찍었다. 드디어 의사가 사진을 살펴보고 설명을 해주었다.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빠진 것은 맞지만 무용도 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였다. 수술을 했다가 평생 절면서 걸을 수도 있는데 다짜고짜 수술부터 하라고 한 건 이상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30대쯤 돼서 인공관절을 넣어야 할 수도 있다고는 하였다. 의사는 말했다. 아줌마 돼서 애 낳고 살 때쯤인데 인공관절 넣어도 괜찮을 거라고... 당장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안정을 되찾고 있었지만 또다시 날 우울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아줌마가 되면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는 소리인지... 조금은 화가 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는 그 한마디 말이 많은 위로가 된다.


처음에 본 의사말이 맞는 건지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는 몰라도 이 일로 인해서 난 많은 걸 얻었다. 겉은 보통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나를 보면서 겉으로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도 난 덜한 거라며 위로도 해본다.


나의 목표와 희망도 다시금 세워본다. 비록 늙어 죽을 때까지 춤추지는 못하겠지만 몸이 다 할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자고... 몸이 안되면 머리로라도 공부하자고...

삶에서의 고난은 더욱 기쁨을 가져다주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난 이전까지 보다 더 많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번일을 통해서 나를 걱정해 주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느꼈고, 나의 희망을 송두리째 뺏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의 조건은 거창하지 않다. 돈도 권력도 행복만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그마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려는 마음가짐 하나만 있다면 먹구름과 비바람의 끝에 무지개를 볼 수 있듯이 행복을 보게 될 것이다.


앞서 던진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난 정말 행복하다고... 목발을 잡는 대신 글을 쓰고 있다는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메일 정리 중 찾아낸 귀한 레포트.

2003년의 생각을 찾았다.

수정을 해서 옮겨 볼까 했지만 그때의 나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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