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불린 나의 애칭
애칭은 사랑 애(愛)와 일컬을 칭(稱)으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한자 뜻대로 애칭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며 계속해서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표현해줄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단어이다.
나에게도 소중한 애칭이 있다. 내 기억이 시작되는 출발점보다도 앞선 어느 시점에 붙여진 내 애칭은 '땡이'이다. '땡이'라는 명칭은 어디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만큼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유추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난 내 애칭을 더 각별하게 생각했고 가끔은 누군가 먼저 내 애칭을 물어봐 주고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궁금해해 주길 바랐다.
‘땡이’라는 나의 애칭에는 엄마와 아빠가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유독 ‘땡’그랬던(동그랬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 속에 새기고 싶었던 엄마의 바람, 그리고 중국어 발음 [xuán] (쉬엔) 을 '땡'으로 발음했던 사랑스러운 서투름을 계속 귀에 울리게 하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 담겨있다. 애칭이 처음 만들어졌던 아득한 순간부터 내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아빠는 나를 내 이름보다는 ‘땡이’로 많이 부르신다. 아빠의 휴대폰 속 내 전화번호도 ‘땡이’로 저장되어 있고 아빠가 만들어준 내 포털 사이트 계정의 닉네임도 ‘땡이’로 입력되어 있다.
요즘 들어 유독 나의 머릿속에서 애칭에 대한 생각들을 잡고 늘어지다 보니, 내 애칭이 불리는 순간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나를 “땡!”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기 시작했고 인터넷상의 닉네임을 모조리 다 내 애칭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누군가 내 모습을 기억해주고 그런 모습을 토대로 나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명칭을 만들어 불러준다는 게 참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나를 표현하는 고유 명칭에 대해 소중함을 느낀 후로 친구들이 나에게 장난을 치려고 웃기게 지은 별명들에도 애착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말은 어떤 색를 입히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와 역할이 180도 바뀐다. 비록 말은 단순히 문자와 소리로만 전달되지만, 듣고 보는 사람은 말에 담긴 그만의 색채와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단순했던 2음절짜리 단어에 특별한 진심을 칠해 넣으니 따사로운 빛깔을 가진 나만의 애칭이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