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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30. 2021

시서화와 캘리그라피 문화

시서화 삼절 사상으로 바라본 캘리그라피      


   최근 N포털 사이트에서 펀딩하는 상품을 하나 보았는데 지역의 사투리를 캘리그라피를 활용해 재치 있게 제작한 술병이었다. 예술가의 작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소비재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캘리그라피는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고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를 사용해 그 속에서 흐드러지게 꽃피고 있는 중이다. 

오주석은 김홍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화가는 치열한 쟁이로 출발하지만 동시에 한 시대 최고의 문화인이 되어야 한다고. 김홍도는 그림은 물론 서예에도 출중했으며 시조에 대한 교양도 풍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김홍도를 향한 찬사를 마지하지 않았나싶다. 

저자는 사실 처음 현대예술품으로서 캘리그라피가 가지는 인문학적 가치를 담론하고 싶어 삼절사상을 꺼내들었다. 그렇다면 캘리그라피가 어떻게 삼절사상을 통해 훌륭한 예술품으로 인문학적 가치를 가지는가. 그리고 오늘의 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예술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단순히 글과 그림과 시를 함께 하는 예술 양식 추구로서 삼절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사유체계의 변화와 발맞췄기 때문에 시・서・화 삼절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김홍도와 같은 문화인이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는 실마리다.      

   1700년대 예술의 영역에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건축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조경이나 웅변 역시 예술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문학의 경우, 문학의 모든 영역이 예술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설이 예술의 영역에 포함된 것은 1900년에 들어서였으며 이 영역의 모든 작품이 예술로 평가된 것도 아니었다. 이는 바로 예술계라는 문화 권력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와 예술의 영역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는 것 역시 이들에 의해서였다. 

 소설이 예술의 영역에 포함된 것이 19900년에 들어서였다고 하니 드는 생각인데, 희곡으로서 시가 예술로 논의되어온 역사에 비하면 티끌 같은 시간이라 여겨진다. 한글 소설의 경우 한글이 반포되고 난 뒤 한문 소설이나 경전 등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 끝에 서민들 사이에 번져나간 민초들의 예술품이었다. 당시에는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겠지만 소설이 예술의 지위로 올라서면서 한글 소설을 재조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방각본이라 하여 민간에서 서민들을 대상으로 상업적 목적을 위해 발행한 책이 있었는데 이 방각본의 출판과 유통의 발달이 한글 소설의 확산을 촉진했다. 우리가 즐겨 읽는 소설의 전신인 것이다. 당시 한글 소설의 대표작이 바로 홍길동전이다. 이렇듯 한글은 서민들의 문화를 예술적 지위에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캘리그라피와 삼절사상을 연관 지어 이야기 해보자. 

현대는 이성의 시대를 지나 감성의 시대이며 콘텐츠는 소통과 공감이 가장 중요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요구로 캘리그라피를 찾게 되었으며 캘리그라피 작가들은 많은 사람들과 쉽게 소통하기 위해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것이 시(詩)와 명언, 노래가사 등이다. 이 점은 문인화가들이 시구에 자주 등장하던 사군자를 그림의 소재로 선택하여 그리기 시작한 것과 유사하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래 역시 동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만 잊혀 지지 않고 소통의 지속이 가능한 것을 통해 마음을 담은 소재를 선택해 작업에 임하는 작가들이 많다. 

글과 글씨와 그림이 함께한다는 단순히 표현기법으로서 예술양식을 넘어 예술사상으로서 삼절사상이 적용된 캘리그라피를 설명하려면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는 문자 자체가 가진 ‘시각적 기호체계’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맥루언의 말처럼 디지털 네트워크의 성장이 오랫동안 기록과 소통의 주요한 매체였던 문자의 위세에 눌려있던 감각을 다시금 일깨우고 논리와 관념, 상징 등으로 환원된 추상이 무엇보다 우선하던 시대를 직관과 감각을 소통의 장에서 직접 작용하게 하는 시대로 만들고 있다. 디지털의 감각은 이미지의 지위를 문자 시대 이전으로 돌려놓았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 및 소비자의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문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문자에 의해서 주로 이루어져 온 의미중심의 의사소통에서 벗어나 의미와 감각과 정서가 조합된 총체적인 소통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방식은 창조활동으로도 이어진다.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캘리그라피이다. 캘리그라피는 소통의 기능이 퇴색된 문자가 오히려 미적 창작활동이 되고, 이미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글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작업들이 있다. 다만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면 한글이라는 문자를 사용해 작가의 뜻을 전해야 하는 양상이 좀 더 지배적으로 공존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캘리그라피는 도구와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글씨를 쓰고 상품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미술과 적절히 소통하는 과정인데, 먹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문인화의 양식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해 자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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