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먹갈기 좋은날 Sep 24. 2021

드라마 보는 엄마는 무엇을 꿈꾸는가

- 백마탄 왕자님은 어떻게 변주되는가

-  엄마도 꿈을 꾼다.     


     우리네 엄마들에게 TV 드라마는 일상의 친구다. 편성표에 따라 그 시간이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시청포맷이 케이블과 IPTV가 활성화 된 이후 몰아보기는 일상이 될 수 있었고 넘쳐나는 인터넷 연예부 기사는 시청요약도 해준다. 이렇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있는 TV드라마는 무엇을 충족시켜 주는가. 일단 연예인의 수려한 외모들은 인간의 미에 대한 시각적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몰입을 일으켜 일상을 잠시 잊게 한다. 이야기를 듣거나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 본성이라고 했다. 이웃집 사람 이야기 같은 TV드라마소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은 느낌도 줄 것이다. “○○엄마, 그 이야기 들었어요?”라고 TV가 우리한테 말을 거는 것이다. 1980년대 MBC <전원일기>가 방영할 때 김회장을 연기한 배우 최불암이 길을 가다 어떤 아주머니에게 ‘김회장님,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었는데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아주머니가 최불암이라는 배우를 몰랐을 것이라는 전제도 있을 것이고 ‘김회장’이라는 캐릭터 연기를 너무 잘한 배우 최불암을 존경해야 할 부분이며 TV라는 매체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중들이 허구의 이야기와 진짜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으로 유명한 배우 민지영은 워낙에 맡은 역할들이 불륜녀, 못된 며느리, 악처 등이라 목욕탕에 가면 욕을 하도 먹어서 갈 수가 없었다는 일화도 있다. 시청자들은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여가를 즐겼고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했다. TV드라마는 우리들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콘텐츠가 되었다.  

    더구나 올 초 불명예스럽게 방영 2회차만에 종영해버린 <조선구마사>는 시청자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적 패러다임이 작용한 결과인데 왕자의 난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백성들에겐 인자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이방원을 잔인무도한 학살광으로 만들고 중국의 음식으로 사신을 대접하는가 하면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마저 유약하고 형편없는 왕자로 그려버렸다. 시청자들은 1화부터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작가와 제작진의 자질부터 정치색까지 의심하며 드라마의 제작을 멈추라는 원성이 빗발쳤다. 

    역사드라마는 대체로 대하드라마로 제작이 되었었고 고증에 기반 해 재미있게 역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TV 매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이 되기 시작하면서는 역사적 배경에 환상이 적절히 가미되어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장르임을 최대한 활용해 MBC‘해를 품은 달(2012)’이나 KBS2 ‘성균관 스캔들(2010)’, KBS2‘구르미 그린 달빛(2016)’ 퓨전사극 혹은 픽션사극이 대세다. 퓨전사극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없어도 시대적 배경만 적절하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시청자들의 태도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혹은 퓨전사극이 아닐거라면 적어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 좀 더 깊이 있게 이야기와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있지만 존경받는 위인들을 함부로 부정적으로 건드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TV드라마만큼이나 실시간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무엇을 꿈꾸는가 인데, 통합적으로 여성이라고 하겠다. 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되었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프린스>, <내 이름은 김삼순>,<시크릿 가든> 등등 열거할 드라마는 너무 많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남자 주인공들이 여자 주인공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설정인 드라마의 대표다. 그러다 요즘 여성들이 꿈꾸는 남성상에 연하남이 반열에 오르면서 <밥 잘 사주는 누나>의 정해인이 연기한 연하남 캐릭터가 정점을 찍었다. 경제적으로 여성이 우위에 있을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의 마음을 흔드는 남성상에 연하남이 있다는 현실 여성들의 워너비가 철저히 투영된다. 그러나 여전히 연하남도 연상녀의 보호자가 철저한 보호자가 되어준다. 실상 이제는 ‘백마탄 왕자님’이 아니라 ‘기사’다. 마치 <모래시계>의 이정재가 고현정을 끝까지 지킨 보디가드로 당시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과 같다. 여성은 자신이 지켜줄 수 있는 남성을 바라면서도 심연의 끝에는 보호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한다. 

     일상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스토리텔링한 로맨스 드라마에 나타난 남성상 말고 판타지소재를 활용한 드라마의 남성상은 어떤가 이야기 해보자. 그 대표가 바로 <도깨비>다. 뿔도 없고, 도깨비 방망이도 없다. 그런데 도깨비가 기사님이 되어 어린 여학생을 지켜주러 나타난다. 촛불을 불어 꺼뜨리면 어디서든 그녀를 지키러 나타난다. 절대적인 능력을 가졌고, 인간성은 결여되어 있는데 여자의 등장으로 휘둘리는 시작하니 모성본능이 꿈틀댄다. 생각지 못했던 이슈가 바로 조연이었던 저승사자 역이었는데, 저승사자가 가지고 있는 어두침침하고 서늘하고 죽음의 향기가 배우 이동욱을 통해 사그라 들었다. 세상 끝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처절한 로맨티스트로 돌변해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탈곡시켰다. 더구나 두 캐릭터를 연기한 ‘공유’와 ‘이동욱’의 외모가 가장 크게 뭇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녀들의 환상을 충족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캐릭터는 오래전부터 순정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였다. 완벽한 남자에게 딱 한가지 없는 그것. 인간성. 여리고 여린 여성이 그 얼음 같은 남자를 녹이는 과정을 보며 여자들은 내가 그 남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가진다.  

     <도깨비> 이전에 <별에서 온 그대>(2013)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이는 외계인에 대한 이미지를 변화시켰다. 서양 콘텐츠에서 그려지던 기괴한 외계생명체는 한국에서는 배우 김수현이다. 엄마들은 <별에서 온 그대>를 보며 태교를 했다고 했을 정도로 신드롬에 빠졌었다. 작은 얼굴에 큰 키, 완벽한 능력, 죽지 않는 신체, 외계인으로 그려진 <별그대>의 ‘도민준’은 뱀파이어와 같다. 아마도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티슨 같은 역할이 아니었을까. 미남 뱀파이어의 계보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브래드 피트와 탐 크루즈가 시초였지만 말이다. 

     엄마들은 드라마를 보며 잠깐의 일탈을 꿈꾸고, 그녀들의 남성상이 그대로 투영되며 급기야는 기괴함과 공포를 상징했던 존재들마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사님으로 재해석했다. 어린아이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며 환상이라는 장르와 소통하고 있다면 성인인 엄마도 일상 속의 환상을 꿈꾼다. 그래도 밖에서 열심히 싸우고 퇴근하는 ‘우리집 기사님’을 위한 밥은 차려야 하겠다. 

이전 10화 진화하는 유아콘텐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