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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전 Jan 05. 2022

성실이 김장이라고? (체험 김장의 현장)

글로 만나는 시간


  아들과 2022년 원 워드를 찾아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이 선택한 원 워드는 "성실"이었다.


   "엄마, 성실의 뜻이 뭐야?"

   "정성스럽고 참됨이라는 뜻이네. 근데 성실하면 뭐가 떠올라?"

   "김치!"

   "김치?"

   "응. 우리 김장 김치 할 때 엄청 성실하게 했잖아."


아들에게 성실을 알려준 김장 김치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김장 김치



  작년 11월 어느 날 친정에서 김장을 했다. 나는 1박 2일의 짧은 시간 동안 조금 도운 것뿐이지만, 엄마는 일주일 내내 준비하셨다. 마늘 까고, 생강 까고, 쑥갓 다듬고, 무채 만들고, 배추 절이고, 절임배추 씻고.... 얼마나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갔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간 김치이다.

아빠가 작은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배추를 일일이 다듬어서 절이고 씻고를 반복해서 준비한 절임배추였다. 매년 힘들게 김장하는 엄마를 생각해서 올해는 좀 수월하게 하자며 절임배추도 미리 주문했다. 조금은 수월하고 편한 길이 많은데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 보니 나는 아직  어른이 덜 된 것 같다.


   "그냥 사 먹지. 왜 이렇게 고생해."


  15년 넘게 워킹맘이었던 나는 매번 친정과 시댁에서 다 만들어진 김치만 쏙 가져가는 딸과 며느리였다. 요즘 얼마나 많은 김치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냐며 한마디 했던 사람이 바로 나이다. 길거리에 나가면 밀키트 가게와 반찬가게들이 즐비하다. 반찬도, 국도, 김치도 무엇이든 생각만 하면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이렇게 매년 김장을 한다는 것이 참 힘들어 보이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 주말이었다.


  가성비, 효율을 가장 우선시하는 에게 김장은 가성비가 떨어지고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김장 속에 들어가는 무수히 많은 재료들과 시간과 노력에 비해 너무나 흔해져 버린 김치를 이렇게 힘들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겉에서 바라보며 쉽게 말할 때와는 달리 올해는 같이 팔 걷고 함께 재료를 준비하면서 김장이 사랑이고 정성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가슴으로 다가왔다.

김장 = 노동 = 비효율 = 가성비 x
김장 = 정성 = 사랑 = 가족 = 함께


  평소 츤데레 스타일이신 우리 부모님은 알뜰살뜰 다정하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 하지만, 그런 우리 부모님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바로 정성 가득한 김치를 담아서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김장을 핑계로 온 가족이 모여서 방마다 북적북적 손주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듣고 싶으셨던 것이다. 신발장 가득 채워진 신발에 본인 신발을 문 밖에 벗고 들어오시면서도 흐뭇하게 웃으시는 아빠 모습이 떠오른다. 방마다 돌아다니며 손주들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시고, 커다란 교자상을 펼치고 17명의 대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계속 담고 계셨다. 김장하는 동안 아빠는 한참 밖에 계셨는데 들어오시며 다듬은 쪽파를 무심히 건네신다.

  "여태 김장했는데 쪽파는 또 왜?"

  "애들 갈 때 가져가라고 얼른 파김치 만들어줘."


  돌아오는 길에 현관 앞 가득 김치통, 무, 들기름, 파김치, 생강절임, 생강 달인 물, 버섯이 나란히 담겨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지만, 무심히 건네는 김치통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정성을 말하는 김치 앞에서 난 왜 그토록 가성비가 중요했을까?'


사실 나는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떼쓰지 못하고 응석 부리지 못하는
항상 바짝 정신 차려서 내 앞가림해야 하는
나 스스로 독립심이 강하다고 착각하는 아이였다.


나의 합리적인 소비, 가성비가 "뭣이 중헌데~"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비효율적이고, 가성비가 떨어지고, 몸이 피곤하지만, 그것이 부모님이 사랑을 전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인가?'

'나는 어떤 비효율적이고 가성비 떨어지기는 하지만 정성 가득한 사랑의 비언어적 메시지를 남기고 있지?'

아직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김장에서 시작된 내 마음속 울림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김장에 대한 울림이 잔잔히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서 아이러니한 사실 하나!

김장하며 대식구 식사 준비는 정말 벅찼다. 온종일 김장하느라 수고한 우리들에게 17명 대식구 식사 준비 팁은 밀 키트와 배달이었다는 사실^^ 언니의 통근 한 턱으로 배부르게 1박 2일 잘 먹었다.


1. 밀 키트로 후딱 식사 때우기

2. 피자, 치킨으로 특식 먹기


그러고 보니 1박 2일 동안 는 그저 철없는 막내로 투덜거리며, 맛있게 먹으며 누리고 왔다. 나의 착각 속 철든 막내에서 벗어나 철저히 철없는 막내로 지낸 1박2일이었다. 나의 편안함 뒤에 부모님의 수고와 섬김, 오빠 새언니의 섬김, 언니 형부의 섬김, 남편의 섬김, 조카들이 스스로 놀아준 기특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근데 이번 명절에는 눈이 엄청 매웠어."

우리 아이들은 그날, 명절맞이를 한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아들은  2022년 원 워드 "성실"을 김장에서 배웠다. 아들에게 체험 김장의 현장은 체험 성실의 현장이었다. 나에게 체험 김장의 현장은 체험 사랑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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