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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파르 Oct 30. 2020

좋은 누나

2015년 10월


2013년 겨울, 40일 동안 배낭하나 울러 메고 혼자 유럽을 여행했었습니다. 첫 여행지 바르셀로나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신나게 쏘다니던 중 사고가 났고, 경찰에게 오토바이까지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억울한 마음과 쩔뚝이는 다리를 꽉 부여잡고 람브라스 거리 벤치에 앉았습니다.


한참을 멍 때리다 맞은편 벤치에 앉은, 남매지간으로 추정되는 소년과 소녀가 보였습니다. 참 예뻤어요. 누나는 동생이 추울까 외투의 지퍼와 장갑을 연신 추켜올려 주었고, 웃으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 동생이 보고싶었습니다. 이런 감정은 제 안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아주 깊숙히 잠재된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정하게 내 동생의 외투 지퍼를 만져준 적이 있던가. 나는 동생이 행여 추울까 걱정한 적은 또 있던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벤치에서 일어나고, 저는 그 감정을 담고 싶어 뒤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다정한 누나가 되어야겠다는 그 때의 감정도 그들이 눈에서 멀어지며 함께 사라졌습니다. 


보통 저와 제 동생의 카톡 또는 대화는 매우 짧습니다.


맛있는 걸 먹는 사진을 보여주거나 무언가를 자랑하면, 답은 "올"(끝).

일정에 지쳐 힘들거나 아파서 엄살부리면, 답은 "'ㅉㅉ"(끝).


하지만 저는 이런 절제된 감정 표현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정당화하며, 다정한 누나되기에 계속 실패하는 중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남매를 찍었던 사진을 사법연수원 사진콘테스트에 출품하여 장려상을 수상했고, 다시 한 번 연수원 로비에 걸린 제 사진을 보며 그 때의 감정이 떠올랐습니다.


다정한 누나되기에 거듭 도전하겠다는 의미로 부상으로 받은 해피머니를 동생에게 줄까 잠시 고민했으나, 저도 사야할 책이 많아 굳이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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