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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n 09. 2023

17억 원 아파트

17억 원짜리 아파트, 가계약금을 보내기 직전에 마음을 돌렸다


나에게는 작은 원룸 아파트가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딸이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것을 못 보겠다며, 특히나 암투병 중이셔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딸이 혼자 이사를 다니는 것이 불안했던 아빠는 그 당시 전세와 매매가가 큰 차이가 없던 집을 사라고 권하셨다.


그렇게 덜컥 집을 사서 그 집에서 8년을 잘 살았고, 4년 전에 동생과 함께 투룸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집에 살고 있다. 2년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나의 작은 아파트는 전세를 주었다.

나는 그 돈에 그동안 모은 돈을 더하고 은행의 도움을 얻어(?) 내가 늙을 때까지 살다가 죽을 아파트를 사고 싶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1. 앞에 막히는 것이 없이 뚫린 뷰를 가진 곳. 물론 그 뷰가 한강이나 천변이라면 더욱 좋다.

2. 25평형, 투룸일 것(혼자 사는데 쓸데없이 방이 3개여서 방이고 거실이고 다 작은 것이 싫었다)

3. 주변에 달리거나 운동하기 좋은 공원이 있을 것

4. 주택금융공사에 넘겨 주택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집(금액 조건 등이 맞아야 함)


아.. 써놓고 보니 간단하지 않은가?

여하튼.. 그리하여 올해 하반기에 집을 살 생각이었는데 늘 성격 급한 나는 계획보다 이르게 움직인다.

지난달부터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다.

성동구에서 생을 마감하기로(ㅋㅋㅋㅋㅋ) 결정하고 성동구 아파트 몇 개를 찍어 중개사님께 보여달라고 요청을 했고 그간 여러 집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 중개사님이 못내 아쉬우셨는지 이 돈이면 조금 더 보태 강남에 집을 사는 게 낫다고 계속 설득을 했고 급기야 강남의 대장주 급이라고 할 수 있는 "청담자이"를 보러 가게 되었다.

살 수 없는 집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집을 보게 되었고, 나는 다시 강남을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가 늙어 죽을 집이 아니라 내가 살지 못할지라도 투자가치가 있는 집을 사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처음 보게 된 청담자이 아파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와 사물과 사람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얗게, 매우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된 실내와 정면으로 보이는 넓은 통창 가득히 펼쳐진 한강뷰.

단언컨대, 태어나서 본 집중 가장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하고 살고 싶은 집이었다.

숨이 턱 멎는 기분

와.. 이런 데서 사는 사람도 있구나.

선을 넘어 남의 세상을 구경한 기분.


그 이후에 본 청담 자이 아파트들은 가격대가 낮은 만큼 첫 집만큼의 임팩트가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성동구의 집을 보다가 중개사님의 추천으로 삼성동 모 아파트 소형평수를 보게 되었고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 계약 직전까지 갔었다.


17억 원.

20평대.


동생과 살고 있는 투룸 아파트는 보자마자 반해서 이 집 무조건 사자고 동생에게 난리를 친 집이었다.

별로 살 생각이 없었던 동생은 나의 멱살잡이에 끌려오듯 집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 17억짜리 아파트는 좋긴 좋은데 지금 집을 봤을 때만큼 이 집이 갖고 싶어 미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가지고 있으면 손해는 안 보겠고... 어쩌면 꽤 이익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물론 금액적으로도 꽤나 큰 위험부담을 지고 구매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나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것은

내가 지금 사는 집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지금 사는 집이 너무너무 좋은데 고작 6개월 살고 새로 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아쉬움과

지금 사는 집보다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두 배 이상의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의아함이 계속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5천만 원, 가계약금을 입금하기 직전 이 모든 일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모르겠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리는 순간 그 집 가격이 급등을 하고 나는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큰 부담을 지는데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는 집을 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나는 훌륭한 부동산 투자자가 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이 아니라 남이 살고 싶은 집을 사야 성공한다고 부동산으로 성공한 주변 으른들이 말씀하셨는데 나는 여전히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꽂히는 집만 찾고 있다.


부린이가 부자로 성공하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래도 이번기회에 17억 원 20억 원 22억 원. 듣기만 해도 세상 눈 돌아가는 금액의 집들을 보고 다니면서

- 와.. 우리 그래도 쫌 성공했나보다. 흙수저였던 우리가 강남에서 부동산쇼핑을 하러 다니다니!

라며 동생이랑 유쾌하게 웃으며 술 한잔 기울일 수 있었다.


올해, 아니면 내년?

과연 나는 내가 살다가 주택연금을 받으며 늙어 죽을 집을 사게 될까

아니면 투자가치가 있는 집을 사게 될까

나 역시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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