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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an 11. 2024

대출의 무게

-다 갚을 수 있을까?(feat. 커피소년, 장가갈 수 있을까)

집 계약 이후 그 집은 진짜 울 엄마의 효녀가 되었다.

동네방네 칠순 선물로 집이 생겨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엄마는 해맑게 혹은 화통하게 웃으며 소식을 전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사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새 집으로 갈 때 무엇을 살지, 새집으로 가면 어떤 일이 있을지에 대해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래, 돈으로 산 효녀가 나보다 낫네.


그리고 나서 대출을 알아보러 다녔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 성격이 엄청 급한 편이라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속도로 모든 것을 해치워버리는데 이상하게 대출에 있어서는 그러지 않았다.

이거 어차피 실제 실행일이 되어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인데 굳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싶었는데, 대부분의 일에 있어 나의 속을 터지게 만들며 느린 동생이 대출에 있어서만큼은 빨리 알아보라고 나를 닦달했다.


그리하여 아무런 지식도 없는 나는 덜렁덜렁 은행을 방문했다.

3개의 은행모두

-너무 일찍 오셨다

며 정보를 제대로 안 주려했다.

아니... 금리 말고 다른 건 다 정해지는 것 아닌가요? 아님 오늘자 기준으로라도 설명을 해주세요 했는데 그마저도 귀찮아하는 게 역력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좀 당황했다.


나...완전 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하튼 날 밀어내는 직원들과 대화를 이어가며 알아낸 정보로는 알아본날 기준으로 금리는 4.99%이고 내가 원하는 금액만큼 충분히 대출받을 수 있다는 확인을 얻어냈다.


그리고 일어서는 나에게 하나같이

- 대출 실행일 한 달 혹은 2~3주 전에 다시 오세요

라던 직원분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12월 말이나 1월 초에 은행을 다시 갈까 했지만 동생의 등쌀에 못 이겨 12월 20일경 다시 은행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 똑똑한 동생의 모습에 반하고 말지.

- 어느 분이 대출받으시나요?

- 저요!

하면서도 나는 보조의자로 빠지고 은행 직원분과 얼굴을 맞댄 건 동생이었다.

그리고 뭔가 엄청난 단어를 구사하며 직원분과 대화를 이어가는 동생.

오!!!!!!!!!!!

이렇게 해야 하는 거라 지난번 결과를 알려줬을 때 동생 녀석이 그렇게 나를 구박했구나 싶었다.


여튼 그리하여 그날도 은행 몇 곳을 돌고 국민은행에서 대출받기로 결정했다.

해당일자로 대출금리가 3.91%.

처음 알아봤을 때보다 1% 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세상에나!!!

마음이 엄청 폭신폭신해졌다.


원래 5% 정도 생각하고 있어서, 처음 대출상담 갔을 때도

- 4.99%에요, 금리가 많이 높죠?

라며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던 직원분들께 그래요!의 의미를 가득 담아 대인배의 표정으로 답했는데

3.9%대라니, 어쩐지 돈 번 기분.


그리고 오늘.

2월 2일 잔금일을 앞두고 최종 대출 신청을 하러 다시 은행을 찾았다.

오늘자로 3.88%이며 실행일에 최종금리가 정해질 것임.

2023년 소득이 높아졌다면 올해 5월 이후 금리인하신청을 해보라고 권유해 주셨다.

꿀팁! 눈을 빛내며 메모를 하고 대출 신청을 완료했다.


우대금리를 위해서는

KB 카드를 만들어 3개월 90만 원을 사용해야 하고

30만 원짜리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KB 계좌에 자동이체 3건이 필요한데 보험 2건과 케이블티브이 1건으로 해결했다.

보험 3건으로 될지 알았는데 가지고 있는 암보험 하나가 두 달만 납부하면 만기 되더라(난 이제 납부해야 하는 보험도 2개밖에 없는 사람이 되네. 이 역시도 인생이 꽤나 후반기에 접어들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급여계좌도 입사 후 쭉 우리은행이었는데 12월 말, 은행 다녀온 후 KB로 변경 신청 완료.

월 1회 스타뱅킹을 통해 계좌이체를 한 번씩 해줘야 함


생각보다 수월하게 우대금리 조건을 다 채웠다.

이제 나에게는 수억의 대출이 생겼다(원금균등상환, 고정5년-이후 변동, 30년)

이거 다 갚을 수 있는 거 맞아?

죽기 전에 다 갚을 수 있어?

나... 정년 전에 퇴직해서 베짱이처럼 살 수 있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우선은 엄마에게 최고의 효녀가 생겼다는 걸로 다 묻어둘 수 있을 것 같다.

차차 생각해 보자.


가장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대출의 무게.

아니다 대출의 무게는 가장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장의 무게에 추를 얹고 또 얹어 몸을 휘청이게 만드는 대출의 무게.



+) 계약서를 쓰며 천만 원을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근저당이 많이 있고 좀 복잡하게 얽힌 것이 있어 그중 일부가 정리되면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중도금조로 보내기로 했었다.

그런데 중개사분께 연락이 왔다.

매도인이 전세를 얻어야 하는데 전세금이 부족하다고, 계약금을 더 올려줄 수 있겠냐고.

안된다고 하자 매도인 사정이 너무 딱하다며 나를 세상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듯한 뉘앙스이다.

뭐지?

난 우리 사정도 봐달라. 우리도 돈을 마련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호소했지만

동생이 이 모든 일을 정리했다.

근저당이 너무 많아 우리가 10% 이상의 돈을 미리 주면 우리의 권리를 위협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모두들 입을 닫았다.


사람들은 참... 누군가 조금만 어리숙하면 등쳐먹을 생각만 하며 살지도 모른다.

조심해야지.

호구될 뻔했다.

이래서 사람은 많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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