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파는 게 대수지
선비는 책을 팔면 수치고,
무사는 칼을 팔면 수치고,
장사꾼은 못 팔면 수치다.
"Hello, would you like to look around our booth?"
"No thanks"
어릴 적 부끄럽게 생각했던 일들이 자라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듯 한때 내성적이란 말을 듣던 나는 지금 지구 반대편 라스베가스에서 부스 앞을 맴돌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클럽 앞에서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언젠가 관광지에서 들린 수산시장의 아주머니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순간이다. 아, 그들은 그저 삶을 살 뿐이고 영업을 할 뿐이었구나.
"야, 다들 모여봐."
생각보다 저조한 반응에 상무님이 직원들을 호출한다.
"이건 말야, 뭐가 잘못된 거다. 봐라, 메인 영업사원인 알렉스랑 C과장은 각자 저 끝에서 삐끼질이나 하고 있고 그 외 사람들은 엉성하게 어슬렁거리며 놀고 있잖아. 직원은 많은데 손님이 없어, 손님이."
그때 깨닫는다. 나는 삐끼였구나.
"나는 내년 전시회에는 인원 이렇게 많이 안 데려올 거다. 자, 지금부터 롤을 줄게. 디자인팀이든 기술팀이든 배정된 자리에 손님이 오면 바로 영업사원들 한태 연결해라. 그리고 영업사원이 응대 들어가면 다시 배정된 자리 지키면서 그걸 반복하는 거야."
운동경기 중에 코치가 선수들을 불러놓고 작전회의를 하듯 중간점검을 마치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계속 삐끼질을 한다. 언젠가 거래처의 나이 든 지사장이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풀던 것이 떠오른다. 건설사 출신인 그는 사우디에 다녀온 이야기를 곧잘 하고는 했다. 자기 삶의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리는 노병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사우디가 있겠죠?"
"여기가 우리의 사우디일 수도 있어."
전시회를 앞두고 둘이 미리 나온 출장 기간 동안 사수 C과장이 말했었다. 삐끼질에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다만 장사꾼이 물건을 팔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선비도 글을 팔아먹고살고,
무사는 무(武)를 팔아먹고사는데,
장사꾼 체면에 가릴 것이 있을쏘냐
입사하고 처음으로 나는 나를 영업사원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