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뒤를 돌아볼 것이다. 그 시기를 맞이하는 것에 연차가 무슨 상관이랴. 스스로 선택한 직무임에도 내가 왜 이 길을 걷고자 했는지 스스로 의아하기도 하고 때로는 납득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해외영업을 시작하고 나선 첫 출장 중, 조지아에서 한참 운전하며 이곳저곳의 업체들을 돌다가 테네시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조지아도 애틀랜타를 벗어나면 충분히 시골이지만 테네시의 작은 마을이 주는 그 심리적 광활함은 단순히 공허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어느 문화인류학자는 말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경험은 중요하다"라고. 지구 반대편 낯설고 볼 것 없는 마을에 고립된 기분을 안고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근데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첫 출장이니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지만, 특히 그즈음은 수출은 차치하고 영업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와닿지 않을 때였다. 미국까지 와서 방문판매원처럼 무작정 문 두드리는, 당시 내 관점에서 쌍팔년도 영업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아했고 이렇게 겨우 하나씩 영업 건을 따내더라도 윗선에서 정한 터무니없는 매출액에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았다.
당시 심정의 결이 거칠었던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답답함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지금에 와서 상당히 해소되었다. 그 분기점이 라스베가스 출장의 전시회였다. 대단한 영업 건을 따낸 것은 아니었지만 출장 중에는 늘 사수인 C과장하고만 붙어있다가 타 부서와 임원들까지 합류한 전시회에서 비록 부스 앞의 삐끼질일지언정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했지? 영어 잘하네"
디자인팀 이사님이 전시회 이튿날 해준 칭잔이나,
"점점 설명이 편해지는 것 같군! 일이 익숙해지고 있구나"
차라리 형 같았던 공장 L 부장의 한마디,
"잘하고 있어. 며칠만 더 힘내자고."
별로 안 좋아하는 사수 C과장의 구색뿐인 말이라도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동력이 되었고 이제 내가 뭘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는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인류 최고의 지성 괴테는 자신의 역작 <파우스트>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아직 대학 시절 꿈꿨던 그런 무역인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러한 모습에 닿기 위한 동력을 얻었음이 지난 라스베가스 출장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