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장에서 방문한 업체였고 거점이었던 애틀랜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테네시 촌동네에 소재한 곳이었다. 마침 한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있다기에 우리 서울 본사와 충남의 생산공장 방문도 유도해 낸 성과였다.
그렇다. 해외 바이어의 내방은 작은 성과다. 우리 사업소재의 특성상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는 국내 중소/중견기업과 거래하는 해외 바이어가 많기 때문에 일단 내방까지 이끌어내서 깔끔하고 자동화된 대기업의 생산시설과 공정을 보여주면 비교적 High 한 우리 가격을 이해해 줄 것이고 회사에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라는 윗선의 계산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출장을 그들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우리 팀에서 막내인 나의 역할은 하루 종일 그들을 에스코트하는 것이었다. 견학경호병, 당번병, 통역병의 역할을 섞은 졸병이랄까.
출근은 그들이 묶는 5성급 호텔로 곧장 한다. 미리 어레인지 해둔 렌트차량 기사님과 다시 한번 통화하고 수시로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의전에 차질 없도록 차량도 대기해 두었다. 그들이 묶는 용산의 5성급 호텔은 일전에 여자친구와 방문하여 그녀의 생일을 보냈던 곳이다. 그때는 설레는 휴식의 장소였는데 지금은 긴장되는 업무공간이다.
바이어가 좋은 호텔에 머문다는 것은 그들의 재무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추리할 수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서류로 그들을 심사할 테지만 나는 이런 요소로 그들을 짐작해야 한다.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서 사수인 C과장에게 상황 보고를 한다. 나의 1차 임무는 내방객을 잘 픽업하여 충남 생산공장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C과장과 상무, 디자인팀의 J차장은 법인차량으로 미리 출발 및 도착하여 그들을 맞이한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즉, 나는 단순히 그들을 픽업하고 가는 길에 이런저런 잡담으로 상대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도착 시간까지 관리해야 했다. 너무 빨라서도 늦지도 않게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내방객은 출장 중에도 만났던 거래처 사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사장친구이자 직원으로 총 세 명이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 그들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금이 겨울이어서가 아니라 그 편한 정서에 놀란다. "야, 우리 나름 대기업이야. 너네가 평소 거래하던 중소기업이랑 달라. 거기 가면 다 정장이야, 인마"라는 말이 머리에 스치지만 나는 내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공장으로 향하는 차 안.
"저 화려한 건물은 뭐야?"
사장의 아들이 묻는다.
"회사야. 한국의 D 그룹 들어봤어?"
"아, 알지. 우리 지게차 그 회사 거야."
이후로도 큰 빌딩에 대한 질문이 두어 차례 더 이어졌고 모두 대기업 사옥이었다.
"알렉스, 결혼은 했어?"
보수적인 미국 정서에는 미혼 남성 영업사원에 대한 LOW 한 인식이 있다고들 한다. "가장도 아닌 풋내기가 무슨 물건을 팔아"라는 느낌일까. 나는 미혼이지만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음을 덧붙인다.
"아니, 아직 안 했지만 애인이 있어. 머잖아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한번 보자고."
사수인 C과장에게 현 위치 어디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더 천천히 오라는 회신이 온다. "기어가냐, 기어가?"라는 괜한 심술과 함께 기사님께 조금만 천천히 가달라고 말씀드리며 아예 상황 설명까지 한다. 베테랑 기사님은 시간에 맞추어 공장에 도착해 주셨다.
공장 L부장이 안전모까지 갖춰쓰고 앞에 나와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는 기억 속 군생활 중, 전장비 점검기간에 중대 창고의 물건을 다 세팅해 놓고 대대장을 맞이하던 행보관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