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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Mar 12. 2023

발주를 기다린다.

영업사원의 열매

 지난 출장의 첫 성과로 점쳐지는 업체에 보낼 샘플이 완성되었다.


 이 샘플제작을 위해, 바이어와 교신하고 디자인팀에 요청하고 공장에 머리 숙여야 했다. 그래도 발주가 근접해진다는 것을 업체의 뉘앙스와 나의 피부로 느낄 적에는 그저 '일하고 있다.'는 기분에 고무되었었다. 이 건이야말로 나의 첫 영업 건이었다.


 수출로 자리 잡은 회사나 영업사원들의 성과에 비하면 작은 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들에게 발주서를 받으면 액자에 넣어두고 싶은 기분이다. 언젠가 어느 회식자리에서 같은 팀 다른 소재의 H과장이 말했었다. 기나긴 수출 협의 끝에 발주서 받을 즈음이 오면, 그 맛을 한 번 보면, 절대 못 헤어 나온다나. 아직 못 헤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무슨 의미였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이 건을 잘 매듭지어서 발주까지 진행할 요량이다.


 대기업이지만 내수시장 위주로 성장한 회사의 특성상 해외영업 네트워크는 구축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 내가 속한 부서의 현실이다. 출장을 가면, 사전에 미팅을 예정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현장에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사수인 C과장의 말에 따르면 "방문판매원처럼" 일하는 것이다.


 스케줄에 체력이 못 따라간 C과장 말에 따라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눈을 붙인 적도 있었고, 끼니때를 애매하게 놓쳐 포장만 가능한 식당의 피자를 사서 차 트렁크에 올려놓고 먹은 적도 있다. 언젠가 자신의 사우디 시절을 주구장창 읊던 한국인 지사장이 떠오른다. 나도 지금 나의 사우디 시절을 보내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 출장이다.


하늘은 맑은데 그때는 광활해 보였고, 그 광활함에 잠시 고립감을 느꼈다.


 김주영 작가의 거작 [객주]의 표지에는 보부상의 애환을 요약한 문구가 나온다. 일행(日行)에 긴 거리를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느라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고개는 짜부라지는데 누가 그들에게 기꺼이 숭늉을 건네라는 내용의 문구이다. 


 [미생]이 자라서 [객주]로 거듭나는 일이다.

 쉽지 않을 리가 없다. 다만, 의연히 걸어 나갈 힘이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

 Let me figure it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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