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렉스 Nov 16. 2024

직장 아니고 직업

생업이되 너무 노동이지만은 않게.

 회사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내 학창 시절의 꿈이었다.

 하기사, 회사원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마땅히 직장이 필요했으니 취직을 하고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승진도 하고 퇴직도 하며 사는 것일 테다.

 나 또한 결국은 회사원이 되었다. 본의 아닌 유학길의 막바지엔 내 뜻을 세워 공부라는 것을 더 해볼까 했지만 당시의 나는 석사나 박사 학위보다 빨리 경제력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경제학도는, 고등시험이나 라이센스 취득을 제외하면, 여의도에 입성하는 게 성공의 첫 단추다. 금융권 말이다. 물론 금융도 고차원/고난도의 전문직이지만 나는 직장인이 되더라도 회사의 그늘 밖에서도 살 수 있는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직무를 원했다. 더불어 기왕 학적까지 해외에 둔 김에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나는 무역인이 되었다. 정확히는 수출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왓츠앱을 통해 메시지가 왔다. 전 직장에서 응대한 바 있는 해외 바이어였다. 건자재를 사고 싶다며 연락이 왔기에 더 이상 전 회사 소속이 아님을 알렸다 (무역인은 업종이지만 아이템은 업계다). 그랬더니 이미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고 싶단다. 그는 바닥재를 구매하고 싶어 했고 나는 한국에서 해당 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를 알았다. 이 바이어의 대리인 노릇을 하며 국내업체와 연결해 주고 발주서 대신 발행해 주면 그게 바로 오퍼상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전 바이어였던 그에게 도울 수 없음을 재차 안내하고 연락을 끝냈다. 여러 사항을 감안한 상식적인 결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이전 회사의 그늘을 벗어나고서도 기술 (혹은 쓸모)을 인정받은 듯했다. 어느 날엔가는 이러한 작업이 본업이 될지도 모른다. 모든 무역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생각하듯.


 자칭 민무역이라 칭하며 (필자의 성이 민 씨다) 뜸하게나마 인스타툰도 그리고 종사하는 직무에 자신감과 자부심이 있지만 나보다 더 오래 무역일을 하고 더 잘 아는 사람도 널렸을 것이다. 무역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무역이란 추상적인 개념이고 수출 / 수입 / 통관 / 물류 등 분야별 전문가가 다 따로 있다. 수출을 20년 해온 사람도 수입이나 물류로 장르가 바뀌면 바보 멍청이가 되기 십상이다. 그나마 포워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덕에 모든 분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나는 길지 않은 사회생활 동안 적잖게 회사를 옮기면서 나름 제 몫 이상의 활약을 해왔다. 아무튼 요지는, 직업인으로 거듭나는데 해당 분야에 통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전문가/대가로 거듭나려면 해당 분야에 통달해야 함이 옳다. 하지만 우리는 전선에 빨리 투입되어 공적을 쌓아야 한다. 전쟁터에 필요한 건 세계 최고 실력의 올림픽 사격선수가 아니라 표적을 겨누고 쏠 줄 아는 소총수다.


 부업 (혹은 부캐)을 대하는 자세도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나는 늘 글을 특기로 여겨왔지만 쓸만하다는 수준이지 내 필력 따위보다 나은 실력자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접을 건 아니다. 평일 내내 힘써 일하는, 정말 자신 있는 본업이 있는 직업인으로서 지금처럼 내 생각과 이야기를 공유할 정도의 실력이면 부캐인 민무역을 지탱할 정도는 충분하다.


 무역인으로서 나의 꿈 중 하나는, 언젠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장소는 기관일 수도 있고 대학일 수도 있겠지만 실전에서 쌓은 경험을 공유하고 운이 닿아 출세했다면 학생들이 나를 보고 이 일에 종사하는 자신을 그려볼 수 있도록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다. 무역은 전 세계 장사꾼들을 상대하며 돈을 벌기 위한 실용학문이다. 선생으로서는 학자보다 상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얹자면, 나로 인해 그들이 늘 꿈꾸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전 04화 나의 서사, 퍼스널 브랜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