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심 : 인생 참고서적

이겨먹는 첫 단계는 선망이다.

by 알렉스

한때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상당히 오묘한 말이다. 질투를 담고 있다기엔 도도하고, 그렇다고 당당하다기엔 쭈굴한 문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저 말에도 이미 부러움이 한껏 담겨 있다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는 이 말에 담긴 정신을 자신의 저서를 통해 "부러워하지 않으면, 그게 지는 거다"라고 비평했다. 동의한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로부터 부러움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그런 상황을 덜 마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남자가 (성별에 따라 갈리는 문제가 아니지만 필자가 남자라 이렇게 주어를 잡는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느끼는 감정이란 둘 중 하나일터다. 질투심이나 경외심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장르다. 앞의 것은 "쳇"이고 뒤의 것은 "우와"다.


필자는 중학교 3학년 음악실에서 (또래에게서는) 처음 그 경외심이란 것을 느껴봤다. 막 임용된 젊은 여선생님이 내준 수행평가는 자유로이 악기를 택해서 자신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토록 자유도 있는 과제를 나는 좋아한다. 서랍에 넣어두었던 하모니카로 미국 포크송인 [오, 수잔나]를 연주했더랬다. 열에 아홉은 리코더로 시시한 동요를 연주했고 어쩌다 피아노 앞에 앉는 녀석들도 어중이 떠중이 수준이었다. "나 정도면 무난하게 잘 마쳤지" 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반장이었던 친구가 앞으로 나가더니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연주한 곡이 이선희의 [인연]이었는데 첫음절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듯했다. 수학문제 좀 잘 푼다고 지 잘난 줄 안다 생각했던 녀석은 진짜 잘난 르네상스맨이었다. 그 친구의 수학성적이나 교내에서의 평판은 아무리 잘나도 부럽지가 않았는데, 그 순간은 부러웠더랬다.


필자가 연주한 [오, 수잔나]는 B+를 받았다. 녀석은 A+였을 거다. 그냥 그러고 말고 싶지가 않아서 선생님께 재시험을 졸랐다. 형평성에 어긋나 안된다는 신규 교사의 강직함을, 교내 여교사 의전서열 (짬) 1위였던 담임 선생님(필자를 썩 이뻐해 주셨다)의 빽으로 꺾었다. 그래봐야 A-였지만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몇 해가 지나고,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복학한 필자는 거시경제 이론 수업에서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이전에도 멘토로 두고 싶은 어른들은 드물게 몇 있었지만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느낌을 준 사람은 (실제로 접해본 사람 중에는) 그분이 최초 아니었나 싶다. 학자 출신이 아니라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MBA 출신으로 은행에서 은퇴한 백발 교수님이었다. 나는 이 일을 재미로 한다고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으니 세속적인 성취도 이루고 강단에서 소일거리를 하시는 분이었다. 전문성, 유머,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봉사정신이랄까, 넉넉함을 그분에게서 보고 배웠다. 종강을 맞으며 손편지도 건네드리고 귀국해서도 가끔 메일을 드렸었는데 지금도 어디서 뭐 하시는지, 건강하신지 문득 생각나곤 한다.


이외에도 벤틀리 타고 다니는 자산가 상무님이나 모셔본 상사 중 제일 어리지만 가장 유능하고 인간적인 지금의 팀장님처럼 앞으로 살면서 나는 많은 강자들을 마주칠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내가 한껏 부러워할 인물들이 내 삶에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나의 동기가 되어주고 내가 참고할 데이터가 되어주고 인연이 닿거든 동료로 함께 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롤모델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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