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협회 무역의 날 공모전 선정 작품
*본 졸작은 필자가 제61회 무역의 날 무역수기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상한 작품입니다*
사원. 기업체의 가장 말단 직급이자 모든 직장인의 시작점입니다. 대개 승진을 통해 한 번 사원 직급을 벗어나면 다시 이 직급으로 돌아올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두 번의 승진 경험이 있지만 역시 두 번의 이직 경험으로 현재는 아직 사원 직급을 갖고 있습니다. 잘못으로 인한 강등이나 퇴사 권유가 아닌 더 큰 도전을 위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기에 당당합니다. 실력 있는 무역인이 되고자 분투했던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 유학 때부터 무역인이 되고자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과 귀국을 앞두고 취직 준비를 시작할 무렵, 평범한 직장인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회사 간판을 걷어내더라도 콘텐츠를 지니고 있는 직업인으로 거듭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진로를 탐구하다가 어학 실력과 글로벌 마인드라는 특기를 살려 무역을 하고자 했습니다. 졸업 직후 여러 종합상사에 지원서를 냈지만 아쉽게도 인연이 닿는 곳이 없었습니다. 2지망처럼 써냈던 포워딩 회사에 최종합격하게 되었고 항공 포워더들이 밀집한 강서구에서 사회생활의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 포워더, 무역실무 사관학교
이름난 종합상사나 대기업 해외영업팀에서 수출을 주도하며 출장과 주재원 발령의 꿈을 꾸다가 본의 아니게 그들의 제품을 화물로서 취급하며 선적일정을 조율하는 포워더가 된 직후에는 실망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포워더의 업무강도는 어느 업계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게 터프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진로를 잘못 찾은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무역업 중에서도 포워딩 실무는 가장 구체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했고 업무에 숙달되도록 저 자신을 던져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계장으로 승진했고 (포워더 업계에는 아직 계장이라는 직급이 살아있습니다.) 회사에서 성과급도 적잖게 받는 유능한 직원이 되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접하는 화주들, 제가 한때 꿈꿨던 해외영업인보다 무역실무에 있어서는 제가 한 수 위라는 것을 자주 느낄 만큼 자부심과 프로정신을 갖고 하루하루 임했습니다.
하지만 무역인으로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채로운 무역 경험을 쌓고 싶었지만 이대로 액셀을 밟으면 저는 평생 포워더의 업무만 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워더는 분명 무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지만 저는 제품을 화물이 아니라 상품으로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중개업자이자 물류인이 아닌 수출을 주도하는 무역인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에 대기업 해외영업팀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 대기업 글로벌영업팀, 신규 거래선 개척의 경험을 쌓다
경력직이긴 했지만, 다시 사원으로 입사한 회사는 이름난 대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은 탄탄한 내수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캐시카우로 삼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즉, 수출팀이 주류가 아니었지만 해외시장을 개척 및 확대하려는 경영진의 판단으로 글로벌영업팀의 편제가 꾸려졌고 그 과정에서 제가 입사 제안을 받아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이지만 해외영업에 있어서는 제로 베이스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PVC 바닥재는 오랜 세월 거래선을 구축하고 좋은 품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국산 제품이 시장을 휩쓴다는 것은 크고 넓은 의미에서 좋은 것이지만 회사의 종업원으로서 저는 그러한 경쟁사들과 겨루어 우리 제품을 시장에 밀어 넣어야 했습니다. 말은 대기업 직원이지만 마치 방문 판매원이 된 것처럼 가장 큰 잠재시장인 북미를 렌트카로 누비며 수출실적을 올리고자 분투했습니다.
해외출장이란 것은 매우 의미가 큰 활동이지만 대학생 때 상상하던 것처럼 마냥 폼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고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영업사원도 엔지니어 몫지 않게 기술적인 지식이 정통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미국 바닥재 업체들이 모여있는 조지아 주를 누비면서 자동차 트렁크에 피자를 올려놓고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하여 회사와 상품을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선적실무에 이어 수출영업까지 경험한 무역인으로 거듭나는 것에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습니다. 제가 개척한 어느 신규 거래선의 담당자는 저도 모르게 임원 분께 저를 칭찬하는 이메일을 써주어 크게 칭찬받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저는 입사 2년이 채 되지 않아 대리로 승진을 했고 수출실적의 신장률을 인정받아 팀원 전체가 연말에 이례적인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습니다. 줄곧 그 회사를 재직하셨던 부장님께서는 그런 인센티브는 회사 생활 평생 단 두 번 받아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자신이 명백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포워더로서 무역실무 기반을 탄탄하게 익혔고 신규 거래처를 개척해서 상품을 수출하는 영업 역량까지 쌓고 나자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기업과 인연이 닿아 저는 또 한 번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왕관을 지켜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직한 곳은 화학회사의 글로벌사업팀이었습니다. 특히 에폭시 제품에 있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회사였습니다. 연봉은 기존의 대기업에서 받던 것과 동일했고 입사 다음 연도에 승진하는 전제로 저는 다시 사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팀은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부서로서 이른바 Global Account로 분류되는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업무였습니다. 많은 국내기업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이 화학제품도 값싼 중국산 제품에 대응하여 글로벌시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경쟁사는 중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현지에서 같은 제품을 취급하는 경쟁사들도 존재했습니다. 당장은 점유율 1위라고 하지만 도태되지 않으려면 계속대비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 왕관의 무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중국은 동일 제품에 대한 저렴한 단가로 공세를 이어갔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현지 기업들의 주도로 안티 덤핑 제도가 시동을 걸고 있었습니다. 안티 덤핑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중국은 미국 시장에서 매우 큰 관세를 물게 되었고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갖고 조사와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슬기롭게 상황을 풀어가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는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를 배움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 역공을 가하는 것이 현재 저의 직분입니다.
◆ 무역인, 성장과 배움의 여지는 무한하다
저의 사회생활은 5년 정도로 아직 길지 않지만 포워더부터 수출영업까지 거치며 한 명의 어엿한 직업인임을 자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만하지는 않고자 합니다. 시장상황은 계속 변하기에 배움과 적응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이 무역인입니다. 물류를 하는 분들도, 수출을 하는 분들도 성장과 배움의 콘텐츠는 그야말로 무한합니다. 자만 대신 자신감을 가지고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하게 역할을 해나감으로써 걸출한 무역인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